송이도 할머니들 강원도 나들이

입력 2010-11-03 17:50


영월영락교회, 국민일보 김순희 전도사 기사 계기 주민 초청

건달 재철(이정진 분)과 형사 충수(이문식 분)가 160억원을 들고 잠적한 여자를 쫓아 외딴 섬 ‘마파도’에 잠입한다. 섬 전체 인구는 5명. 모두 여성으로 할매들이다. 하지만 건달과 형사도 꼼짝 못하는 ‘강적’이다. 20년간 남자 구경 못해본 이 엽기적인 할매들이 재철과 충수에게 말한다. “밭 갈래. 죽을래. 시키는 대로 하면 별일은 없을꺼구만….”

이 전라도 ‘마파도’ 할매들이 강원도 영월에 납시었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박물관특구 영월에 볼일이 있으시단다.

남자, 뭐에 쓸라고

영화 ‘마파도’는 전남 영광군의 한 섬이 배경이다. 실제 세트도 영광군 백수읍의 동백마을에 차렸다. 어차피 마파도는 상상속의 섬이다. 조금 더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근처 섬 중에 마파도라 할 만한 곳이 어딜까. 송이도부터 떠오른다. 세트장과 직선거리로 22㎞로 비교적 가장 가까운 섬이다. 영화 속 노을 지는 섬 풍광이 송이도의 그것과 똑같다.

28일부터 4일간 영월을 찾은 송이도 다섯 할매는 장순이(76) 문정희(74) 오정님(73) 문은순(64) 박순자(60). 그렇다고 엽기적이진 않다. 남자가 궁하지도 않다. 젊은 남자가 적다뿐이지 송이도에 남자는 많다. 남편과 사별한 지 30여년 된 장순이씨 눈빛이다. ‘남자, 뭐에 쓸라고.’ 문은순씨는 남편이 있다. 이번에 동행한 김종운(64)씨다.

일행 11명 중 부부가 두 쌍이다. 숙소는 3개만 잡았다. 여성용 2개, 남성용 1개다. 부부끼리 주무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야유가 쏟아진다. “아이고, 됐으요.”(문은순씨)

“아따, 이런 데서 누가 손잡고 자게 놔두간요. 혼자 있는 사람도 있는디, 따로따로 불러내 잠 못 자게 만들어 불지.”(박순자씨)

본지 섹션 ‘이웃’ 덕분

이번 나들이는 국민일보 섹션 ‘이웃’이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9월 30일자 ‘섬처녀 성처녀’에 송이도교회 김순희 전도사가 소개됐고, 이를 본 영월영락교회 안봉엽(55) 목사가 김 전도사와 교인, 주민을 초청했다. 오래전 섬사람들의 소원이 기차 타는 것, 돼지고기 먹는 것이란 말에 자극 받았다는 것이다. 박선규 영월군수, 고진국 도의원 등 지역 유지에게 식사대접 등 도움을 청했다. 전매순(56·여)씨는 “그게 다 오래전 이야기지, 요즘은 자식들 사는 서울까지 가는 데 버스가 더 편해서 기차는 안 타”라며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가 귀한 곳이 섬이다. 일부러 뭍에서 사들고 가야 먹을 수 있다. 29일 저녁 영월 한우를 먹으며 이들은 연신 “송이도 한번 꼭 와라,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한반도 서남단 섬에서 북단 강원도 영월까지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하루 만에 왔다. 여러 사람이 도왔다. 갈아탈 때도 서둘러야 해서 노인·장애인 교통비 할인도 챙기지 못했다.

28일 오후 1시반 배로 송이도를 출발한 일행은 오후 3시 계마항에 도착했다. 이들을 안 목사의 지인인 전북 고창중앙교회 전종찬 목사가 대전역까지 봉고차로 모셨다. 오후 6시30분 무궁화호 열차에 올라타고 오후 8시40분 제천역에 닿았다. 안 목사가 제천역에서 마중했다.

송아지의 덫

엽기는 아니어도 강적일 수는 있다. 이날 파고가 높았다. 박씨 설명이다. “여객선 객실 이쪽 끝에 앉은 사람이 저쪽 끝으로 굴러. 창 밖을 보니까 배를 엎어버릴 것 같은 게, 파도가 오리새끼처럼 뛰어 오를 것 같더라고. 화장실도 못 가겄어. 애기들은 멀미 때문에 어찌나 울고 토하는지….” 다들 괜찮았냐고 물었다. “우리가 달래 섬사람인 줄 알어?”

바람이 세면 맛조개가 모래 속으로 숨는다. 숨구멍을 닫아 웬만해서 캐기 어렵다. 또 보통 수확 철에는 개펄에서 채취한 맛조개를 경운기로 옮긴다. 요즘은 바람도 셌고, 수확철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라면박스 4개 분량의 맛조개를 산골 교회를 위해 선물로 가져왔다. 하루 3∼4시간씩 이틀 동안 2㎞를 뒷걸음질하며 맛조개를 캤다고 했다. 이 박스가 11인승 봉고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김 전도사는 고속도로 주행 3시간 동안 서있다시피 했다.

문은순씨는 송아지 두 마리를 잘 없앴다고 자랑했다. “송아지는 여물을 매일 줘야잖여, 그래서 한번도 여행을 못 갔어. 그거 팔아 치웠으니까 이번에 왔지…” 섬에서도 송아지는 큰 살림밑천이다.

교회도 다닐까부러

29일 저녁 숙소에서도 수다는 이어졌다. “닭은 괜찮아. 모이 듬뿍 주고 왔어. 고양이도 문지방에 묶어 놓고 먹이 쌓아주고 왔지.” 문은순씨가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지들끼리 곗돈 타서 잘도 놀러 가잖여. 우리는 교회가 있어서 다행이여. 전번에는 제주도도 갔잖여.” 오정님씨의 말을 전매순씨가 받았다. “강원도 영월은 처음인데, 우리 전도사하고 안 목사님 덕분이야. 집 나오니까 내가 밥 안 하고 주는 밥만 먹어 제일 좋아. 아따, 이제 교회도 다닐까부러.” “전도사가 머리까지 해줬잖여.” 교인인 문은순씨가 약속이라도 받을 기세다.

전도사·교회 자랑은 섬 자랑으로 이어졌다. “강원도라 산은 좋네, 하지만 공기는 그래도 송이도여.”(문은순씨) “섬이 좋은 것은 부부가 싸워도 갈 데가 없다는 거제. 집 나가도 그냥 짐 깔고 앉았다가 집엘 가야혀.”(박순자씨) “아이고 기자양반, 온 김에 노래나 하고 가.”(전매순씨)

이들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시작으로 선돌, 김삿갓 문학관, 한반도 지형과 닮은 선암마을, 사진 곤충 인형 책 박물관을 들렀다. 31일 영월영락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원주에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마파도가 먹는 파여?

영화 ‘마파도’는 봤을까. 송이도 도착 즈음에 전화를 걸었다. “한 3일 동안 섬에 못 들어올 뻔했어요. 배 타러 갔더니 풍랑주의보라고. 마침 일 보러 나온 송이도 배가 있어서 그놈 잡아타고 들어왔어요.”(김 전도사)

“그런데 혹시 마파도 보셨어요?” “뭔 파?”

영월=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