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신념화’된 북한 추종이 늘어난다고?
입력 2010-11-03 18:35
“아무리 남한 사회와 자본주의가 싫더라도 친북·종북이 그 대안은 될 수 없다”
지난달 두 건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이 보도됐다. 북한 체제를 찬양한 일용직 노동자와 북한 망명을 기도한 의사가 각각 구속됐다는 내용이다. 이적표현물을 소지·공표한 노동자 김모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북한체제의 우월성과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존경을 강조했다. 또 스웨덴으로 가 북한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의사 신모씨는 검찰 조사에서 “한국사회에 염증을 느낀다. 수령님의 품에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 진술했다.
일견 특별히 새로울 건 없다. 비슷한 일은 심심치 않게 있어 왔으니까. 그러나 공안당국 관계자의 말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단지 호기심 때문에 그랬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태도가 일반적이었지만 올해 들어 확고한 신념에 따라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씨의 경우 “내 신념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개인이 어떤 신념을 지니든 자유다. 그게 자유사회의 특성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친북 신념’은 적어도 정상적인 사고능력 또는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예사조로서가 아니라 신의 안티테제로서 악마를 숭배하는 악마주의(Satanism)를 이해할 수 없듯.
다시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북한의 실상을 보자.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 개발에는 없는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수많은 인민을 굶겨죽이거나 외국에서 유리걸식하게 한다. 또 표현·종교의 자유 등 인민의 기본 인권은 아예 무시한다. 게다가 언필칭 공화국이라면서 조-부-손 3대가 국가권력을 대물림하고, 국가지도자는 무소불위한 절대 군주, 혹은 사이비종교의 교주와 다를 바 없다.
그런 반인륜적·반민주적 체제와 그 수령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게 신념이라고? 그리고 그 같은 신념을 가진 남쪽 사람들이 자꾸 생겨나는 추세라고? 3대 세습을 계기로 좌파 진영 내에서도 대북 비판이 나오면서 반북 좌파가 분화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는 판이다. 그럼에도 대체 무엇이 거꾸로 가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홍진표 계간 시대정신 편집인 등은 저서 ‘친북주의 연구’에서 친북이라는 레이블을 붙일 수 있는 사람들의 동기를 대략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①김정일 체제 붕괴로 인한 대혼란에 대한 두려움 ②강한 반미감정에 근거한 북한 체제와의 동질감 ③정략이나 당략, 대북사업을 통한 경제·사회적 이익 등 이해관계에 따른 편향성 ④반공, 반북에 집착했던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반작용 ⑤맹목적 호감.
대충 망라된 듯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우선 이른바 내재적 접근. 북한 내부의 처지에서 북한을 봐야 한다는, 말하자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북한 정권의 행태와 북한 사회의 참혹한 실상도 모두 이해가 된다. 이해는 나아가 북한에 대한 공감과 연민으로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인지부조화이론도 있다. 가령 A사의 선전에 혹해 자동차를 샀다고 하자. 결함이 자꾸 발견되는 반면 타사 제품의 장점이 부각돼도 이미 A사 차를 구매한 만큼 스스로 A사 차가 좋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추구하게 되고, 나중에는 A사 자동차야말로 좋은 차라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게 인간 심리라는 이론이다. 여기에 A사 자동차 대신 북한을 대입한다.
또 옛 소련시절 반체제 운동가였던 나탄 샤란스키는 ‘도덕적 선명성(moral clarity)’의 결여야말로 동료 시민을 적으로, 외국(외부)의 독재자를 친구로 보게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선명성이란 자유사회와 독재사회의 차이, 즉 선과 악을 판별하는 인식능력을 말한다. 이런 샤란스키의 지적이야말로 ‘북한 수령님의 품’이라는 미망(迷妄)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신념화된 북한 추종이 더 이상 늘어나게 놔둘 수는 없다. 가장 현실적인 친북의 동기로 모순이 적지 않은 남한사회와 자본주의가 못 견디게 싫다 하더라도 그 대안을 더 큰 모순덩어리인 일인독재 수령 세습체제의 북한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줘야 한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