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기성] 건물 높이는 안전확보된 만큼만

입력 2010-11-03 17:48


지난달 발생한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원인은 가연성 외장재 시공에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자력과 문화재 분야 화재안전관리를 연구해 온 필자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가연성 외장재를 시공하지 않은 국내 초고층 건물은 과연 안전할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해운대 화재처럼 직접적인 원인에만 관심을 두기보다는 다른 유형의 화재로 인해 건물 내부로 화재가 전파될 경우 안전이 확보돼 있는지를 분명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필자는 초고층 건물 화재안전관리와 관련해 국민의 안전권 확보와 알권리 차원에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정비와 공학적 검증이 시급한 사항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화재로부터 무엇을 보호하려고 하는가. 인명, 재산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명 안전이다. 유독성 물질을 취급하거나 저장하고 있는 산업시설의 경우 환경문제도 화재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피난 계단과 방화구획 필요

둘째, 화재안전 측면에서 본 초고층 건물의 정의는 무엇인가. 미국화재협회 기술기준인 인명안전기준(NFPA 101)에서는 초고층 건물을 고가 사다리차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한계인 23m로 설정했다. 그러나 국제건축기준(IBC)의 경우 최근 외부에서 소화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최대 높이인 128m 이상의 건물을 초고층 건물로 설정하고 이에 따른 새로운 요구사항을 마련했다. 이는 화재확산 방지를 위한 소화시스템에 공급되는 소화용수의 공급 신뢰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셋째, 초고층 건물 화재발생 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화재로 인한 열과 연기로부터 보호를 받는 피난용 계단 및 엘리베이터이다. 이외의 피난 방법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내 모 대학 소방학과 교수는 언론 기고를 통해 “빌딩 탈출용 개인 낙하산이나 스파이더 장갑처럼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피난기구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가까운 장래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건축물의 인명 안전과 관련한 국제기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넷째,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화재 발생 초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와 같은 고정식 소화시스템과 화재 확산을 막아주는 방화구획이 필요하다.

다섯째, 초고층 건물에 잠재된 화재 위험은 무엇인가. 피난용 계단을 통해 연기를 빨아들이는 연통효과(Stack Effect)를 방지하기 위해서 피난용 계단을 일정 높이로 끊어줘야 한다. 도보 피난이 물리적으로 곤란한 노약자는 피난용 엘리베이터로 대피하게 해야 한다. 또 건물 외부에서의 소화용수 공급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소화용수 공급라인을 2개 이상으로 확보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고, 유리창을 통한 화재 전파 방지를 위해 물분무 및 유리창 간의 수직 이격거리 유지 등이 중요하다.

미비한 관련법 현실화해야

여섯째,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같은 경우에 대비한 화재안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초고층 건물을 설계할 경우 화재안전전문가로 하여금 화재 및 인명안전 계획(Fire & Life Safety Plan)을 먼저 세우게 한다. 미국 NFPA 101의 경우 분량이 91쪽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 건축법규에 소개된 건축물 인명안전기준은 모두 합해 4개 조항으로 분량이 1쪽에 불과하다.

국내 유수의 건설회사가 세계적인 초고층 건물을 시공했다고 해서 설계능력과 적정한 규제가 불비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초고층 건물을 건설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문할 필요가 있다. ‘건축 가능한 초고층 건물의 높이는 안전이 확보되는 높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강기성(전력경제연구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