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춘 ‘산수컬렉션’, 풍경 너머의 세상까지… 자유로운 동양화

입력 2010-11-03 17:32


한국화가 박병춘(44·덕성여대 교수)은 산수 채집을 위해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난다. 틀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고 붓으로 스케치를 한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만 담아내지만 붓은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 너머에 있는 것까지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고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그의 그림은 그래서 자유롭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12월 3일까지 열리는 ‘산수컬렉션’은 작가의 작업 특성을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10일간 밤낮없이 작업한 거대한 폭포가 시선을 붙든다. 7m 높이의 천장에서 내리꽂듯이 설치한 폭포 줄기는 지난 1월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봤던 폭포에서 영감을 떠올려 흰색 천으로 만들었다. 폭포 뒤 벽면에는 강원도 영월과 정선의 풍경을 병풍처럼 그렸고, 바닥에는 검은색 수조에 물을 채워 수묵화를 입체로 구현해냈다.

지하 1층에는 검은 비닐봉지로 산수를 만들었다. 시장에서 상인들이 뭉쳐서 버려놓은 비닐봉지 모습에서 힌트를 얻고 2006년 인도 여행 중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떠올려 완성한 ‘비닐 산수’다. 버려진 비너스 조각에 청테이프를 감은 작품, 국내외 곳곳에서 주운 돌 100개를 늘어놓은 ‘산수 채집’, 섬 모양의 돌에 집 한 채 얹어놓은 작품, 칠판에 분필로 그린 ‘산수 공부’ 등이 재미있다.

1996년 첫 개인전 이후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실험적인 한국화로 주목받은 작가는 “지난 전시가 동시다발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제 나름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신선한 도전에 나서는 그는 이제 “따뜻하고 사람냄새 나는 그림으로 산수 풍경 속에서 관람객들과 함께 놀고 싶다”는 것이다.

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방식으로 나무들을 묘사한 ‘병춘준법’과 숲길을 라면 모양으로 그려낸 ‘라면준법’을 창안한 그의 그림에는 소파 자동차 바나나 행글라이더 등이 등장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명상과 상상을 유도하는 장치들이다. 해외 산수들도 이국적이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들이 손짓한다. “날자, 날자,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02-736-437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