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 '시애틀 등대'서 삶의 빛을 찾다
입력 2010-11-03 01:36
커트 란츠씨는 열두 살 때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그 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한 시각장애인 학교를 거쳐 공립 고교와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란츠씨는 워싱턴주 스포케인으로 이사한 뒤 마침내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애틀 등대’가 스포케인에 또 다른 등대를 설립한 덕이었다. 이름 하여 ‘북서 내륙지방 등대(INL)’. 그는 리더십을 인정받아 지난해 INL에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일과가 끝난 뒤에는 몇몇 밴드에서 드럼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애틀 등대, 능력이 장애를 초월하는 곳=시애틀 등대는 시각장애인이나 시청각장애인 또는 시각 및 여타 장애를 동시에 가진 사람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영리 단체로 1918년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장애인들에게 직업 교육을 시키는 동시에 그들에게 실제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등대’는 미국 전역에 산재돼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국민일보·삼성전자가 공동 주관하는 새내기사회복지상 2009년도 수상자들 그리고 사회복지 관계자들과 함께 지난달 시애틀 등대를 방문했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교육과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애틀 등대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하는 훈련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 교육은 특히 중시된다.
컴퓨터 교육을 위해서는 스크린에 나타난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JAWS(Job Access With Speech)’라고 부르는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특수 컴퓨터가 100여대나 준비돼 있다. 이들 컴퓨터는 대당 1만 달러나 된다고 했다. 이곳 직원 케리 브렌트씨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고선 직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며 “이곳에서 컴퓨터 교육을 통해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도 양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애틀 등대에는 현재 장애인 230명이 일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도 150여명 고용돼 있다. 장애인만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 등대는 2016년까지 장애인을 500명까지 고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애틀 등대 내 작업장에서는 군용 플라스틱 물통과 반합 등 군용 물품, 화이트보드나 파일폴더 등 다양한 사무용품은 물론 첨단 항공기 부품도 생산된다. 이 가운데 군용 물품은 국방부에 직접 납품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품목은 항공기 부품. 시애틀 등대에서 생산되는 100여 종이나 되는 항공기 부품은 보잉사에 납품된다.
이는 보잉사가 같은 시애틀에 위치하고 있는 시애틀 등대와 긴밀한 상생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애틀 등대에서 일하는 장애인 가운데 70~80명은 항공기 부품 생산 파트에 배치돼 있었다. 지난해 보잉사에 부품을 납품하고 얻은 수입은 전체의 13%나 됐다. 시애틀 등대는 연방 정부 보조금, 각종 제품 판매 수익 외에 지역 사회 기부를 통해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다. 연방 정부 보조금은 전체 운영자금의 절반을 넘는다.
◇어빌리티원, 장애인을 위한 연방 정부 프로그램=시애틀 등대는 이 같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독립적인 연방정부 기관인 ‘구매위원회’가 관장하는 ‘어빌리티원(AbilityOne)’ 프로그램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어빌리티원 프로그램은 두 개의 중앙 비영리기구(NIB, NISH) 주관 아래 시각장애나 여타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대신 연방정부에는 장애인들로 하여금 각종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토록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의 비영리기구는 모두 630개나 되며 장애인 4만2000명이 이에 따른 혜택을 받고 있다.
장애인들이 어빌리티원 프로그램을 통해 생산하는 사무용품은 모두 2000여종에 달한다. 여기에다 의류, 의료 장비, 군용 장비를 만드는 것은 물론 식료품 가공과 포장도 한다. 또 어빌리티원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는 콜 센터 운영, 도로나 군사시설 유지 보수, 경비업무, 세탁, 우편 업무, 문서 파쇄, 운송장비 운영 등 실로 다양하다. 이 같은 서비스 가운데 문서 파쇄와 우편 업무는 국세청(IRS), 쓰레기 처리 등 시설 관리는 미 육군, 식료품 가공과 포장은 미 해군과 각각 계약을 맺고 있다.
시애틀=정원교 기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