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 심한데 대책 손놓아… 암각화 풍전등화
입력 2010-11-02 21:01
한국 암각화발견 40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올해는 천전리 암각화 발견으로 한국에서 암각화 연구가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의 후속 일정으로 28∼29일 울산·경주·포항 일대에 흩어진 암각화 유적지 6곳을 답사했다. 학술대회에 참가했던 국내·외 학자 20여명도 동행했다.
◇암각화 훼손·방치 심각=첫 번째 일정은 사연댐 수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였다. 1965년 사연댐 완공으로 반구대 암각화는 1년에 8개월 이상 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다. 이 날도 암각화는 물에 반쯤 잠긴 상태였다. 외국인 학자들은 강 건너에서 망원경을 통해 암각화를 보면서 탄식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그림의 마모가 이미 심각해져 망원경을 통해 봐도 윤곽이 희미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허권 한국 유네스코 평화센터 원장은 답사에 앞선 학술회의에서 유적 발견 이후 반구대 암각화의 암면 훼손이 23%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울주 천전리 암각화. 반구대보다는 나았지만 관람객의 훼손을 피할 수 있는 어떤 보호 장치도 없었다. 형식적으로 선만 둘러쳐져 있을 뿐이었다. 군데군데 금이 간 흔적에 학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학자들은 “관람객들이 함부로 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고, 돌이 떨어져 나갈 위험도 굉장히 높아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그나마 돌의 형태가 아래로 갈수록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 비에 의한 훼손은 덜한 편이었다.
경주 석장동 암각화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 이끼로 인한 마모가 뚜렷했다. 답사를 안내한 한국암각화학회 이하우 박사는 “유적 발견 이후 훼손이 굉장히 빠르다”며 “유적지가 알려지자 사람들이 와서 함부로 만지는데다가, 이끼가 마음대로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칠포리 암각화 군(群)은 포항 칠포리와 신흥리에 걸친 6군데의 암각화 유적지를 가리킨다. 이 날 답사한 곳은 곤륜산과 신흥리 오줌바위 유적. 곤륜산에 이르자 비파형 그림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적 보호를 위한 별다른 인력이나 시설이 없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였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사람의 손길을 덜 탔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장석호 박사는 “칠포리 유적지의 경우 현재까지 훼손 정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며 “마모를 막을 수 있는 시설을 연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돌에 별자리로 추정되는 각종 구멍이 뚫려 있어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일 것으로 보이는 신흥리 오줌바위 유적지에는 산불 흔적이 뚜렷했다. 시민단체인 포항KYC문화역사길라잡이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이곳에서 3∼4차례 산불이 발생했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 문제 해결책 못 찾아=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암각화 보존 문제는 관련 유적들이 산이나 물가 등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관리가 쉽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답사에 참가한 한 학자는 “누군가 망치로 유적을 두들기기로 마음먹는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사회가 전반적으로 문화재를 홀대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사람들이 유적을 함부로 다루는 데 주저함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반구대 암각화 문제도 ‘문화재를 홀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연댐 수위 조절 논란은 1971년 반구대 암각화 발견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울산시는 현재 60m인 댐 수위를 52m 이하로 낮춰 유적을 보호하라는 여론에 “울산 시민들의 식수 문제가 걸려 있어 수위를 낮추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지자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보호 조치를) 추진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국무총리실 주재로 문화재청과 울산시, 국토해양부가 참석한 관계기관 회의가 열려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고 대체 수원을 확보하도록 하는 조정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 경우 수위를 낮추는 데 따라 줄어드는 울산시의 식수 6만t(1일 기준)을 인근 운문댐과 울주 대암댐에서 끌어오게 되는데, 수질 문제 등을 이유로 울산시가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울산·경주·포항=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