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서 부패한 검사 역 맡은 류승범 “연기하고 있을 때 가장 깨어 있는 나”
입력 2010-11-02 17:43
“저는 대중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제 영화가 졸작이어도 지지하고 좋아해주는…. 팬이라기 보단, 친구가 필요해요.”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 ‘주양’ 역을 맡아 열연한 류승범(30)을 28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류승범은 재치있고 성실한 인터뷰이였다. “인터뷰를 하면 저는 매번 ‘구라’를 풀고 똑같은 기사가 나가요. 마음을 담아 진실하게 인터뷰를 해도 똑같은 기사가 나가고요. 그러면 행복한가요?” 라는 말로 기자를 한 차례 당혹하게 만든 것만 빼면.
“‘주양’은 정의를 위한 정의가 아닌,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일하는 캐릭터예요. 부패한 경찰을 끝까지 못살게 구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지요.”
류승범의 형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부당거래’는 초등생 연쇄살인범 검거를 둘러싸고 여론의 질타로 궁지에 몰린 경찰이 범인을 거짓으로 조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청을 전격 방문하는 대통령이나 기업인과 골프를 치는 검사 등 어디서 보고 들은 듯한 장면이 곳곳에서 비춰진다. 실력이 있어도 연줄이 없으면 승진이 어려운 조직, 경제계와 ‘스폰서’ 관계로 유착된 경찰과 검찰, 진실을 밝히는 듯하지만 결국 관(官)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언론까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구석구석 포착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류승범은 배짱과 노련한 눈썰미를 갖춘, 그러나 부패할대로 부패한 검사 역을 맡았다. 하지만 류승범은 영화를 통해 정치를 읽어내려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선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대중문화인은 좌나 우가 아니라 중립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문화적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계몽주의자 같은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 영화가 ‘현재 한국 사회의 현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어떤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말을 듣는데,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지요.”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부당거래’가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스폰서 검사, 향응 기자 등 사회가 입 밖에 꺼내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치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느끼는 영화의 핵심이 그것인데 부인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스폰서 검사 같은 건 처음 찍을 땐 ‘저런 게 어디 있어?’ 싶었던 건데 나중에 보니 뉴스에 나오더라고요. 픽션이었던 얘기가 논픽션이 된 거죠.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는 이미 관객들의 몫이에요.” 그러면서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고 말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이래 10년. 배우로서 좌파거나 우파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만의 철학은 생길 법한 연차다. 그는 ‘깨어 있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이라는 숫자가 내가 돼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신이 어느 새 늙어버리고, 나이가 자신이 돼버리는 그런 것 있잖아요. 항상 자의식이 깨어 있었으면 해요.” 아무리 류승범이라도 어떻게 나이 먹지 않고 늘 깨어 있을 수 있는가?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저는 제일 깨어 있을 때가 연기할 때예요. 연기하고 있으면 깨어 있고, 모든 것이 자유로워져요.”
그는 그러면서 ‘대중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만나서 술 마시진 못하더라도, 그들은 절 느낄 수가 있잖아요. 얼마나 멋져요. 저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게.”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