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 2명 동반 사퇴… 인권위 파행 운영 불가피
입력 2010-11-01 18:23
국가인권위원회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차관급)이 현병철 위원장의 조직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동반 사퇴키로 했다. 두 위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권위가 정부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 위원은 1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 들어 국가 공권력이 남용되는 사례가 많지만 인권위가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 자괴감이 든다”고 밝혔다. 문 위원도 “현 위원장의 부임 이후 인권위가 파행과 왜곡의 길을 거쳐 이제 고사(枯死)의 단계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다음달, 문 위원은 내년 2월에 임기가 끝난다. 두 위원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퇴한 데 대해 “현 인권위 체제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범 당시 진보적 성향이었던 인권위가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우(右) 편향’으로 일관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보수성향의 현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MBC PD수첩 재판부에 대한 의견 표명’ ‘박원순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의견 표명’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 등에 대한 의견 표명’ 등을 모두 부결시켰다.
하지만 두 위원의 사퇴 표명은 최근 상임위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운영규칙 개정안이 상정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인권위 상임위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개정안은 상임위원 3명이 상정된 안건에 합의해도 위원장 판단에 따라 전원위원회에 상정할 수 있게 했다. 또 반드시 상임위 의결을 거쳐야 했던 긴급인권현안에 대한 의견표명도 전원위를 경과토록 했다.
유 위원과 문 위원의 사퇴 표명으로 인권위 업무는 당분간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상임위원 3명 중 두 명이 사퇴하면 인권위는 상임위 의견표명, 권고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또 두 위원의 사퇴에 동조하는 일부 직원의 집단적인 의견 표명도 예상된다. 인권단체 사이에서는 이미 인권위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어 앞으로 인권위의 행보가 주목된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며 “행정안전부의 사퇴 수리 여부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상임위원 2명의 동반사태로 인권위 내부에 동요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