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또다른 슈퍼스타 이미경
입력 2010-11-01 17:49
케이블 채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2’(슈스케)의 그림자가 길다. 스타 탄생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로 막을 내릴 줄 알았으나 그들을 향한 박수가 끊이지 않는다. 프로그램 하나가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내면서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포커스의 중심에는 허각이 있다. 환풍기 수리공 신분으로 134만대 1의 경쟁에서 우승한 그는 2억원의 상금과 함께 성공학의 전범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2등 존 박도 잇따른 초청공연으로 ‘패자의 눈물’을 닦을 여유가 없다. 3등 장재인은 그 다양한 표정으로 인해 ‘업신’ 시리즈에서 손담비와 겨룬다. 4위 강승윤은 그가 열창한 노래 ‘본능적으로’를 소유권자 윤종신으로부터 양도받더니 급기야 윤종신의 다른 노래까지 흥행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패자는 없었던 것인가.
사회자 김성주 아나운서도 떴다. 지상파에서 잘 나가다 프리랜서 선언 후 부진을 면치 못했던 그는 이 프로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중계하던 당시의 인기를 회복했다. 심사위원들에 대한 추앙은 말할 것도 없다. 선글라스를 쓰고 나와 가혹한 멘트를 날리던 이승철이나 갑상선암 투병 중에 나왔던 엄정화는 흥행의 인큐베이터였다. 프로듀서가 조명받는 것도 자연스런 결과다. 김용범 PD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틀에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요소를 가미해 한국적 오디션 프로의 포맷을 만들어냈다.
종잣돈 20억 내놓는 결단력
그러나 허전하다. 스타를 배출하고, 광고가 완판되고, 시청률 두자릿수 기록이 전부일까. 슈스케가 여러 PD들이 만든 기획안 중에 하나였고, 그냥 운이 좋아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배후에는 무서운 기획자가 있다. CJ E&M의 이미경 부회장이다. ‘슈퍼스타 K’ 성공 이전에 고통스런 실패의 과정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돌발영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병철 가문의 장손녀이자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누나다. 조미료를 만드는 식품산업이 아니라 문화산업의 파워맨이다. 그가 이끄는 CJ E&M에서 E는 Entertainment, M은 Media를 일컫는다. 이런 배경에서 슈스케를 처음 기획했고 과감하게 베팅했다.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오디션 프로의 성공을 믿었고, 음악산업의 발전을 담보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 확신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자칫 날릴 수도 있는 초기자금 20억원을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슈퍼스타 K’의 전신이랄 수 있는 2005년 ‘배틀 신화’는 똑같은 오디션 형식을 취했으면서도 대중으로부터 버림 받았다. 강원래와 김완선 박상민 같은 인기가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강호의 고수들이 출전했지만 이렇다할 성과없이 돈만 까먹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때 익힌 제작 노하우와 연출력은 보약이 되어 4년 후 ‘슈퍼스타 K’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달 말 마카오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뮤직페스티벌 ‘MAMA’에도 아시아 음악시장을 겨냥한 엠넷과 이미경 부회장의 의지가 잔뜩 실렸다.
비전 없는 리더는 없더라
요즘 ‘슈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과 허각이라는 스타의 탄생을 통해 시대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황식 총리는 조계종 총무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허각이라는 이름을 몰라 외계인 취급을 받았지만, 정치인들은 제각기 허각의 성공에 담긴 코드를 독해하느라 분주하다. 여당은 공정사회의 모델로 끌어들이고, 야당은 거기서 집권의 방정식을 읽어내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타와 더불어 스타 탄생이 가능한 환경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 실패의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 시청자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연출, 그리고 치밀한 비즈니스 모델. 이 시스템과 룰을 모르고는 ‘슈퍼스타 K’의 본질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슈퍼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경과 허각을 동시에 공부해야 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