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시인의 뼈

입력 2010-11-01 17:41


바람이 차다. 출퇴근길 행인들은 종종 걸음을 치며 지하철로 내려간다. 걸음은 지독히 개별화되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옆 사람을 보지 않는다. 옆자리 승객이 배를 움켜쥐고 고꾸라져도 그건 타인의 아픔일 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토록 개별화되고 내부지향적일수록,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은 어둡고 후미질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의 개가 앞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무참히 무너진다. 전철 한 량에 동승한 승객들은 서로 밀착되어 있지만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공정사회란 우리 삶의 슬픔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시인을 일컬어 시대의 아픔을 먼저 앓는 자라고 한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2001년 문예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 송경동을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문학잡지가 아니라 광장이며 시위현장이다. 누군가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을 때, 그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는 2008년 용산에도 있었고, 콜텍 노동자 시위에도 있었고 지난주까지만 해도 기륭전자 시위 현장에 있었다.

“가난한 인력시장에서/불법으로 언제든 살 수 있는/64만원짜리 싼 기계들이 있었다./1년만 쓰다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기계들/그 기계들도 엉덩이를 가지고 있었고/발개지는 볼도 가지고 있었다/(중략)/도저히 참지 못해, 그들이 싸디싼 비정규기계가 아닌/하자 없는 정규사람임을 외쳤을 때/너희는 본보기로 수십 대의 기계를 대책 없이 내다버렸다”(송경동 ‘너희는 고립되었다’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둘러싸고 6년여 동안 노사가 대치했던 기륭전자 사태가 마침내 타결됐다는 소식이다.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송경동 시인은 그러나 현재 병원에 누워있다. 기륭전자 사태 1000일을 앞둔 2008년 2월부터 비대위 집행위원장을 맡아 기륭전자 조합원들과 고락을 함께해온 그는 지난 15일부터 서울 가산동 옛 구로공단 내 기륭전자 구 사옥 정문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포클레인 운전석 지붕 위에 올라가 생활해 왔다. 그날 포클레인을 앞세워 농성장을 철거하려한 사측에 맞서 윤종희 조합원이 포클레인 바퀴 밑에 드러누웠고 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은 포클레인 지붕 위에 텐트를 얹었다.

포클레인 지붕 위에서 기거한 지 11일째 되던 지난 26일 송 시인은 발을 헛디뎌 포클레인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포클레인이 길을 막았다며 욕설을 퍼붓던 택배기사를 보다 못해 양말 바람으로 돗자리를 밟고 일어나 신발을 내던지다 중심을 잃은 탓이다. 2m가 넘는 포클레인에서 아스팔트바닥으로 떨어진 시인은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달려와 골절된 발목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는 순간에도 “나 좀 포클레인으로 옮겨 달라”를 반복했다. 조합원들의 만류에도 그는 기어이 부축을 받아 다시 포클레인 위 텐트로 기어 올라가 몸을 뉘었다. 양말을 벗겨보니 오른쪽 발뒤꿈치가 심하게 골절되어 뒤틀려 있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지난 주말 수술을 받았지만 적어도 1년 동안은 땅에 발을 딛지 못할 정도로 중상이다.

상처뿐인 영광이란 말은 아마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는 병실에 누워 “발뒤꿈치 뼈가 으스러져 인공뼈를 집어넣고 수술을 받았다”면서도 “이번 기륭전자 노사의 극적인 합의를 계기로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의 추락이 전화위복이 됐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곧 겨울이 닥치면 김소연 분회장이 밤을 지샐 포클레인은 손만 대도 쩍쩍 들러붙는 영하의 괴물로 변해 갈 것이 걱정되던 참이다. 그러나 그 괴물은 사회적 약자들의 꿈을 이루는 희망의 거처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6년이란 세월은 너무 길고도 잔인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뼈가 으스러진 시인이라니! 시인의 뼈는 우리 시대의 뼈이기도 하다.

정철훈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