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2 우승자 허각 “못 배운 놈이라도 꿈은 있어요”

입력 2010-11-01 16:28


평범한 외모의 스물다섯 살 청년 허각. 중졸 학력에, 환풍기 수리공 출신인 그의 인기가 요즘 하늘을 찌를듯하다. 음악전문 케이블채널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서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지역예선까지 포함하면 무려 135만명 가까운 참가자들 중에서 뽑힌 최후의 승자다. 빼어난 가창력도 화제였지만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의 과거사는 대중들의 감성을 흔들었다.

‘한국의 폴 포츠’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고, 허각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88만원 세대의 인생 역전’ ‘인간 승리’ ‘공정사회의 상징’….

허각은 그러나 자신을 그런 틀에 가두려는 시류(時流)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저는 노래를 좋아할 뿐이에요. 제 배경이 아니라 노래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습니다.”

지난 29일 엠넷이 있는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허각을 만났다. 그는 이날 밤 방영된 토크쇼 ‘슈퍼스타K2 기적이 되다’와 ‘우리는 슈퍼스타K2’ 리허설에 여념이 없었다. ‘슈퍼스타K 2’ 최종 11명이 모두 참석해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였는데 친구과 함께 하는 시간이 반가웠는지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우승한 지 이제 1주일이 지났어요. 우승으로 무엇이 달라졌죠?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주셔서 바빠요.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슈퍼스타K 끝나면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지, 놀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이 오히려 합숙할 때보다 더 힘들고 바쁘네요.”

-슈퍼스타K는 서바이벌 게임이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슈퍼스타K에 참가하면서 150명까지 남고, 50명까지 남고, 24명까지 남고, 마지막 11명까지 됐잖아요. 거기까지 살아남았다는 게 스스로도 놀랐어요. 하지만 스트레스는 별로 받지 않았어요. 11명이 한집에서 살면서는 경쟁관계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죠. 정말이에요. 가족같이 지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랬을 거예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방송하면서 탈락하는 친구들을 정말 가족을 보내는 심정으로 보냈죠. 마지막에 존 박하고 둘이 남았을 때는 ‘즐기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슈퍼스타K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모든 일들이 척척 들어맞았어요. (슈퍼스타K) 시즌1 할 때는 환풍기 수리 일을 하고 있을 땐데 일이 바쁘다보니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죠. 나중에 방송하는 걸 보고야 알았어요. 시즌2가 있다는 걸 인터넷을 통해 알았고, 일하면서 틈틈이 노래연습을 했죠. 지난 3월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 뒀는데 그때 마침 시즌2 참가자 모집을 해서 지원했지요. 날짜에 딱 맞춰서 그만 두게 된 거죠. ‘이게 운명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참가했지요.”

-참가자들이 쟁쟁했는데 우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죠?

“제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지역예선 3차 때는 ‘그래도 연예인 심사위원 앞에서 한번 노래를 해 보니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톱10 안에 든 이후에는 완전히 마음을 비웠어요. ‘이번 주에는 내가 집에 가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무대에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마음을 비운 게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우승이 확정된 뒤 기분이 어땠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뻤죠. 우승 그 자체보다는 이제 시작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어요. 연습생 시절에는 무대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가수의) 기회가 안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길이나, 조그만 무대 같은 데서 노래하는 게 나에겐 전부 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슈퍼스타K 참가로 저에게도 길이 열린 거죠. 제 노래를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부산에 있는 사람에게도, 청주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려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제가 노래만 잘 부르면 그게 사람들에게 전달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뜁니다.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게 너무 기뻐요.”

-합숙 기간에 존 박, 김지수와 특히 친하게 지낸 걸로 아는데 우승 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었나요?

“겸손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제가 우승한 게 믿기지 않아요. 실력만으로 된 게 아니라 기회도 왔었고, 운도 따랐고, 모든 것이 알맞게 맞춰져서 우승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부족한 게 많아요. 누가 우승하더라도 우리 11명은 영원할 거고,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었어요. 누가 우승하든, 서로 모른 척할 것도 아니고, 자주 보게 될 거고, 열심히 노력해서 선배님들이 계신 무대에서 다시 만나 경쟁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우승한 거 가지고 미안하다거나, 그런 감정은 별로 없어요.”

-우승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대중의 관심은 한순간 일 수 도 있고…. 아이돌 스타 일색이다시피 한 요즘 가요계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건 어차피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죠. 또 제 옆에는 이 친구들(슈퍼스타K 11의 다른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10명도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서로가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결승전에서 부른 ‘언제나’가 본인의 첫 곡인데, 그 곡을 받고 기분이 어땠어요?

“‘내 곡이구나. 이건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저에게 딱 맞게 너무 잘 만들어주셨어요. 너무 너무 감사해요.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에게서 곡을 받았는데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죠(작곡가는 SG워너비의 ‘라라라’, 다비치의 ‘사랑과 전쟁’ 등을 만든 조영수씨다). 그 분이 다른 선배 가수들에게 준 걸 노래방에서 부르는 게 저에겐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분에게서 곡을 받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 거죠.”

-노래 부르는 걸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출전할 때도 그런 생각이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즐겨보고 그만 두자.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기회니까,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도 해 보면서 한번 즐겨보자’ 이런 마음으로 대회에 나온 거죠. 그런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면서 그만 두겠다는 마음이 점점 사라졌어요. ‘나는 더 해야겠구나. 내 나이가 많은 게 아니구나. 이제 시작이구나. 나는 포기할 나이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슈퍼스타K를 통해 ‘꿈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오늘 리허설 방송 화면을 보니 허각씨를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소개하던데, 그런 표현이 마음에 드나요?

“거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신께서 저에게 목소리만 주고 모든 것을 앗아가셨으니까요. 하지만 장재인에게 붙여준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가 저는 더 마음에 들어요. 제 노래가 누군가의 가슴을 울렸으면 좋겠어요.”

-본인에게 노래는 뭐죠, 노래가 있어 행복한가요?

“저는 그냥 제 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한 때 길이 막혀 다른 길로 가야하기도 했죠. 궂은일도 해 보고, 알바(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그렇게 막혀있던 길에서 서성이다 이제 그 길이 뚫려서 다시 걷고 있잖아요. 저한테 이 길이 또 언제 막힐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길이 끝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걸어가야 될, 의무적으로 계속 걸어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가수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은 게 언제냐고 물었더니 “18세가 지나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4살 때 노래자랑에 나가 1등을 했다는 사연을 들은 적이 있던 터라 의외였다. 그는 “그 때는 철부지였고, 노는 것 좋아하고 그랬던 시절”이었다며 17살 때부터 쇼핑몰 등 여기저기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노래 경연 대회에도 나갔다고 했다.

-존 박, 강승윤은 벌써부터 광고나 CF에 데뷔했던데 부럽지 않나요?

“물론 부럽죠. 그 친구들은 (광고주가 기대하는 것에) 맞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 (광고주가) 찾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제 소주 CF 들어오지 않겠어요(웃음).”

-요즘 쉴 틈은 있어요, 잠은 제대로 자나요?

“그저께는 한숨도 못 잤어요. 밤 1시에 전날 일정이 끝나 숙소에 도착했는데 씻고, 옷 갈아입고, 새벽 3시에 다시 나갔어요. 미용실에 가서 머리 단장하고, 단체 공연 뮤직비디오 촬영에 들어갔는데 오전 11시에 끝났어요. 그 다음에는 저와 존 박은 ‘강심장’(SBS) 녹화하러 갔어요. 낮 12시에 녹화 들어가 밤 10시30분에야 끝났죠. 그러고 나서 다시 밴드연습실로 가 신승훈 선배님 만나, 내일 모레 있을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 공연 연습하고 새벽 3시쯤에야 집에 들어와 겨우 눈을 붙였어요.”

-앞으로 활동은 어떻게 하나요, 소속사는, 매니저는, 앨범 발매 시기는.

“소속사는 아직 결정된 게 없어요.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해요. 소속사에 들어가 빨리 활동하기보다는 연습을 통해 저를 더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앨범 작업은 11월 초쯤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11월 28일 중국 마카오에서 열리는 MAMA(엠넷 아시안 뮤직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거예요.”

-허각씨의 과거가 순탄치는 않았잖아요. 그래서 허각씨의 우승을 두고 ‘인간 승리의 표본’ ‘공정사회의 상징’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런 말 들으면 어때요?

“저를 노래만 잘하지 못 배운 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도 꿈이 있어요. 못난 놈도 아니었고요. 제가 노래 부르는 데 가정사 배경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 그런 말을 듣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어려서 헤어진 어머니 이야기, 환풍기 수리공 얘기, 그런 거 알리고 싶어서 알렸던 거 아니에요. 프로그램하면서 제 이력에 대해, 제 가족관계에 대해 써야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을 뿐인데 어느 날 제가 ‘한국판 폴 포츠’가 돼 있더라고요. 그런 표현이 나쁘지는 않지만 저한테 너무 과분한 말이에요. 먹고 살려다보니까 노래 부르는 것 잠깐 멀리한 것 뿐인데, 자꾸 그런 일들이 거론되는 게 쑥스럽기도하고요. 그런 수식어를 없애고 싶어요. 가난한 내 배경을 없애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말들이 더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거죠. 저는 그냥 노래로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약속을 하고 찾아갔지만 빡빡한 일정 때문에 좀처럼 인터뷰 시간을 잡을 수 없었다. 4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고, 겨우 얻어낸 인터뷰 시간은 넉넉치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는 의외로 즐거웠다.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를 만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사랑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당당하게 달려가는 ‘반듯하고 쿨한 청년’을 만나서였다. 진짜 가수로 출발선 상에 선 그를 불현듯이 응원하고 싶어졌다. “우리의 허각, 파이팅!”

허각은

198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해 아버지, 쌍둥이형(허공)과 함께 지냈다. 중학교 때부터 노래를 좋아해 노래자랑 대회에도 가끔 나갔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다. 키 163㎝에, 둥글둥글한 얼굴과 통통해 보이는 몸매 등 너무도 평범한 외모지만 어려서부터 노래에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7살부터는 길거리 공연이나 행사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특히 발라드를 즐겨 불렀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에 나가기도 했고, 올해 초까지 환풍기 수리공으로 일했다. 우승상금 2억원으로 아버지, 형과 함께 살 전셋집을 마련할 계획이란다. 여자친구가 있는데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대담=라동철 문화과학부장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