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사퇴로 새 국면 맞은 신한은행… 류시열·이사 8인 ‘특위’ 체제 차기 경영진 선정 착수
입력 2010-10-31 22:02
라응찬(72)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LG카드 인수 당시 10원 단위까지 적어내 ‘신산(神算·신의 계산)’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했지만 후계구도 갈등과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는 끝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신한금융은 그의 직무대행을 맡은 류시열(72) 비상근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이사회는 류 이사의 호칭을 직무대행이 아닌 ‘회장’으로 결의하고 그를 보좌할 특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류 회장과 특위는 31일 후임회장 물색, 그룹 안정 방안 확립, 금융·사법당국의 전방위 조사에 대한 대응체제 구축에 착수했다.
◇물러나는 거목=“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라 전 회장은 30일 열린 이사회에서 회장직 사퇴의사를 밝힌 후 기자들과 만나 이처럼 소회를 밝혔다. 이사회에선 “차명계좌와 관련해서는 금융당국의 선처를 당부한다”고도 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모든 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다만 주주총회까지 등기이사직만 유지키로 했다.
류 회장은 이사진 12명의 만장일치로 직무대행에 선정됐다. 류 회장은 “현 상황에서 최우선 과제는 신한금융 조직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라면서 “특정인, 특정 집단의 이익 때문에 대의명분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는 라 전 회장과 신상훈 신한금융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 9명으로 구성된다. 전성빈 이사회의장은 “특위는 류 직무대행과 함께 차기 경영진 선임과정을 진행하고 그룹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 등을 수립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이사회 멤버들이 특위를 구성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전 신한금융 고위 관계자는 “라 전 회장이 아직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고, 특위도 사실상 과정만 하나 더 늘어났을 뿐 이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느냐”면서 “문제가 터지자 서둘러 봉합하려는 모양새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사태의 당사자인 신 사장과 이 행장이 자진해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피력한 것도 ‘신한호’가 여전히 불안한 항해를 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산적한 당면 과제들=신한은행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신 사장을 검찰에 고소한 지 58일 만에 회장 직무대행체제로 돌아선 신한금융은 첩첩산중에 놓여 있다. 먼저 두 달 가까이 분란이 이어지면서 그룹 임직원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급선무다. 류 회장은 이날 일요일임에도 출근해 지주회사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은 뒤 임직원과 함께 그룹 안정방안을 논의했다.
차기 경영진 선정은 사실상 ‘뉴 신한’을 수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책무다.
금융권 관계자는 “라 전 회장이 당국으로부터 철퇴를 맞고 외부 인사가 회장직을 맡게 되면 사실상 다른 금융지주사처럼 관치 경영에 돌입하는 것”이라며 “후임 물색이야말로 특위에 주어진 가장 큰 임무”라고 평가했다.
당장 발등의 불인 금융·사법당국의 조사 역시 차기 경영진 선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신한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오는 4일 열리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라 전 회장에 대한 징계수위가 결정된다. 특위로서는 금감원의 제재수위를 가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특히 라 전 회장이 업무정지 등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사회와 제재심의위는 별개”라며 “라 전 회장이 스스로 책임을 인정한 만큼 원칙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8일부터 신한은행 정기 종합검사가 예정돼 있고, 신 사장도 이번 주 중 검찰의 수사를 받을 것으로 보여 신한금융으로서는 멀티 플레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