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희망, 强小기업] (49) 무릎용 인공관절 업체 코리아본뱅크

입력 2010-10-31 18:45


IMF 이겨낸 신뢰와 기술 대기업 자본 두렵지 않다

“작은 금속부품 3개로 이뤄진 인공관절 하나가 미국에선 경차 1대 값에 팔립니다.”

바이오 기업 코리아본뱅크 심영복 대표는 31일 서울 가산동 본사에서 인공관절 제품을 들어 보였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무릎용 인공관절은 국내에선 건강보험이 적용돼 세트당 220만원 수준이지만 미국에선 6500달러(730만원)에 거래된다.

티타늄을 소재로 사용하는 이 회사 제품은 기존 코발트크롬 인공관절에 비해 내구성이 훨씬 좋고 무게도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코리아본뱅크는 2008년 미국의 인공관절 전문 업체 엔도텍과 총판 계약을 맺고 한국 내 대리점 역할을 하다가 지난해 엔도텍을 인수했다. 엔도텍은 세계 인공관절 시장의 30%가량을 점유하는 존슨앤드존스사의 주력 제품을 개발한 교수 2명이 독립해서 만든 회사로, 기존 제품의 단점을 보완한 티타늄 소재 인공관절을 생산하던 중이었다. 아시아의 무명 업체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의료기 회사를 사들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심 대표는 “인수전에 뛰어든 다른 업체들이 금액 측면으로만 접근한 반면, 우리는 돈보다 개발자들의 명예를 지켜주겠다며 인정(人情)으로 다가간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럭비선수 출신에 제약회사 영업사원 출신다운 ‘끈기 있게 들이대기’로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심 대표는 1997년 회사를 차려 조직 이식재를 수입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조직 이식재란 기증자의 뼈, 인대 등 인체조직을 치료용으로 가공한 것을 뜻한다. 심 대표는 당시 우리나라에선 생소했던 조직 이식재가 미국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보고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자본금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창업하자마자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다. 심 대표는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험을 택했다. 주변에서 끌어 모은 4억8000만원으로 밑지는 장사를 시작했다. 다만 외환위기가 끝난 이후에도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병원에 납품했다.

심 대표는 “그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되면 버티지 못하고 망할 게 분명했지만 다행히 9개월 만에 환율이 떨어지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위기 때 밑지면서 확보한 거래처의 신뢰 덕분에 이후 사업은 순탄하게 성장했다. 현재 코리아본뱅크는 국내 조직 이식재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영업사원 출신 CEO답게 현장에서 꾸준히 의사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업 아이템도 다양해졌다. 의사들이 원하는 의료기기, 신약 등을 하나씩 추가한 것이다. 엔도텍도 가볍고 편한 인공관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하던 중에 알게 됐다.

코리아본뱅크가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개발 중인 분야는 ‘골형성 단백질’이라는 바이오 시밀러(복제약) 부문이다. 잇몸뼈 등이 결손된 부위에 새로운 뼈가 빠르게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물질로, 임플란트 시술 기간을 대폭 앞당길 수 있다. 코리아본뱅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골형성 단백질 양산에 성공,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임상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심 대표는 “연내 허가가 나오면 임상기간을 거쳐 내년 3분기쯤부터 시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코리아뱅크는 국내 직원 130명 중 석·박사 출신 연구원이 25명이며, 매출의 15∼2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삼성, SK 등의 바이오·의료기기 사업 진출 움직임에 대해 심 대표는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을 단기간에 뚝딱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기업과의 경쟁에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