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미술’의 세계로 초대한다… 멕시코 작가 ‘오로스코’ 한국서 11월30일까지 개인전

입력 2010-10-31 17:33


1997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 출품하고 2003년과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다. 이 전시는 올 여름 스위스 바젤 쿤스트뮤지엄을 거쳐 현재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내년 초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국제적인 미술행사와 세계적인 미술관에 잇따라 작품을 출품한 작가라면 그는 거장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멕시코 출신의 개념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48).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미술계에서는 이미 대가의 대접을 받고 있는 작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그의 경력은 어느 작가 못지않게 화려하다.

철학과 감성이 어우러진 작업을 통해 90년대 초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의 전시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 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열린다. 한국 첫 개인전으로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드로잉 등 50여점을 선보인다. 이른바 ‘개념미술가’로 분류되는 오로스코의 작업은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하기 어렵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작품은 온갖 사물들을 바닥에 배열해 놓은 ‘작업대의 세부’. 선인장 줄기와 뿌리, 대나무 뿌리, 화산암, 벽돌, 강가의 돌 등 멕시코 사막에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를 자신의 그림과 함께 바닥에 늘어놓았다. 고정된 작업실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한다는 그의 작업대를 보는 듯하다.

벽면에 걸린 ‘호날두 발레’도 눈길을 끈다. 지난 6월 열린 남아공월드컵 G조 예선경기에서 포르투갈 공격수 호날두가 북한 골키퍼 리명국의 태클을 피해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에 둥글거나 반원형의 기하학적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전시를 위해 최근 내한한 그는 “스포츠 장면은 쉽게 잊혀지지만 도형을 배치하면 그 동작에 주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시트로앵 자동차를 세로로 3등분 한 뒤 가운데 조각을 빼고 양쪽의 조각만을 결합시켜 새로운 자동차를 탄생시키거나 점토 덩어리를 양손으로 쥐어 우연히 만들어진 심장 모양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을 해왔다. “어떤 스타일을 갖는 것은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게 되는 것이며 나는 그런 것을 깨고 싶다”는 것이다.

주로 조각과 설치작업을 해왔던 그는 2004년부터 회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사진 프린트나 캔버스 위에 다양한 원을 배치해 그리는 작품으로 원들은 체스 경기의 기사처럼 옆으로 한 칸, 위로 두 칸씩 규칙에 따라 배열한다. ‘안테나’ ‘레드 플래그’ 등 작품들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시키면서도 나비가 펄럭이는 듯한 서정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격자무늬 물방울’에서 보듯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은 우연성이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언제나 발생하고 모든 것은 계속 변화해요. 여행이나 일상 중 만난 사물들을 통해 얻게 되는 영감이나 깨달음 같은 것을 표현하지요.” 디자인적인 회화와 인류학적인 설치작업이 섞인 그의 작품은 서구문명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만나는 느낌이다(02-515-9496).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