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 ‘혈방(血房)지도’
입력 2010-10-31 18:43
중국에 ‘혈방(血房)지도’가 등장했다. 중국 각지의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주택 철거 사건을 표시한 지도다. 혈방은 ‘피 묻은 주택’이란 뜻이다.
중국 인터넷에서 최근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게 이 혈방지도다. 2주 전쯤 인터넷에 처음 등장한 후 지금까지 1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인터넷상에서 혈방지도 위에 있는 전자표시를 클릭하면 갑자기 피로 물들인 토지에서 화려한 빌딩이 솟아오르며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적 철거사건 개요와 최신 정보가 제공된다. 지도에서 불 모양의 표시는 분신, 침대 모양은 사망자 발생, 화산은 강제철거에 대한 집단반발 등을 나타낸다.
지도에 표시된 강제 철거 사건은 82건이다. 상하이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중국 대부분 지역이 포함돼 있다. 특히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온 동부연해지역에 집중됐다. 탕푸전(唐福珍) 철거분신, 장시(江西) 이황(宜黃) 철거분신 등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사건들이 망라돼 있다.
중국에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불법 강제 철거로 인한 주민-개발업체-정부 당국 간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무차별적인 강제 철거에 분신자살을 하거나 집단시위를 벌이는 경우도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혈방지도를 처음 제작한 당사자는 미니 블로그를 통해 “최근 끊임없이 발생하는 폭력적 철거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불법, 반인성적으로 건설된 혈방을 구매하지 말도록 권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많은 누리꾼 등 민중이 혈방 구매를 거절하자는 데 동참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개발업체와 당국의 무차별 폭력 철거에 대한 민중의 반발과 경고를 나타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사회가 발전하고 개방되면서 민중의 권리 의식이 변화되고 사회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신문인 경제관찰망은 31일 ‘혈방지도는 중국 국민의 권리 피눈물 지도’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의 비극적 흔적”이라며 “이는 민중의 피와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