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퇴역은 없다

입력 2010-10-31 17:55

지난 29일 열린 제47회 대종상영화제는 최우수작품상을 ‘시’에 줬다. 이창동 감독은 66세 윤정희씨와 65세 김희라씨 두 60대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었고, 그 영화가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가 됐다. 윤정희씨는 1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당대의 쟁쟁한 여배우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따냈다. 김희라씨는 말조차 온전히 할 수 없는 몸으로 출연했고, 이날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젊음으로 빛나는 배우들을 앞에 두고 두 노배우는 수상소감을 말했다. 윤정희씨는 “제가 몇 년 뒤에도 좋은 작품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끔 많은 사랑과 용기를 달라”고 부탁했고, 김희라씨는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속에 계속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의 인생에 몇 편의 영화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종상영화제를 보다가 2주 전 일본에서 만난 ‘백수(白壽)의 시인’ 시바타 도요를 떠올렸다. 90세가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99세가 된 올해 3월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냈다. 스스로 “한 노인의 중얼거림이나 혼잣말”이라고 한 이 시집은 7개월 만에 70만부 넘게 팔렸다. 지난 몇 십 년간 일본에서 그만큼 많이 팔린 시집은 없었다.

시집을 출판한 아스카신서의 편집자는 “노인, 아마추어, 시는 출판계에서 다들 기피하는 비주류였다”며 “도요씨 시집은 이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는데 단숨에 사회의 중심을 꿰뚫어버렸기 때문에 일본 출판계가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시집은 지난달 한국에서도 번역됐다.

사진집 ‘윤미네 집’ 얘기도 여기 붙일 만하다. 아마추어 노인 사진가가 낸 책이 국내 사진집 판매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작가는 2006년 작고한 고(故) 전몽각씨. 평생 토목공학자로 살아온 그는 나이 육십이 되어서 이 책을 출간했다. 첫 사진집이었다.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사진집은 큰딸 윤미씨가 태어나던 순간에서 시작돼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1990년 1000권 남짓 제작됐던 이 책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고, 지난해 11월 20년 만에 복간됐다. 우리나라에서 순수 사진집으로 2쇄를 찍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윤미네 집’은 첫 달 매진을 기록했고, 어느새 4쇄를 찍었다.

살아 있는 한 모든 인간은 현역이다. 퇴역은 없다.

김남중 차장 njkim@kmib.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