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주의보… 뇌 속의 시한폭탄 혈관기형 혈압 오르면 갑자기 터진다

입력 2010-10-31 17:26


“일을 하다 갑자기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답니다. 도저히 머리를 들 수가 없어 책상에 기댈 수밖에 없을 정도였대요.”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두통이었어요. 극심한 통증이 뒷목을 타고 내려오면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며칠 전 뇌동맥류가 파열돼 모 대학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생명을 건진 김 모(49 남), 이 모(27 여)씨의 사연이다.

최근 일교차가 큰 데다 갑자기 기온까지 내려가면서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가톨릭대 의대 성바오로병원 뇌졸중센터 안재근 교수는 31일 “날씨가 쌀쌀해짐에 따라 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압이 급상승하게 되고, 이로 인해 뇌혈관 파열 위험이 높아진 것이 주 원인”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뇌동맥류란 뇌혈관의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혈관기형을 말한다. 계속 진행되면 혈관 벽이 얇아지고 약해져 바람이 꽉 찬 풍선처럼 예고 없이 터지게 된다. 이렇게 뇌동맥류가 파열될 경우 10명 중 3명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할 정도로 위험하다. 뇌동맥류는 뇌 속 지주막을 통과하는 제법 굵은 동맥에 주로 생기기 때문에 파열했을 때 출혈량도 매우 많다.

뇌동맥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2%에 이를 정도로 많다. 파열 위험은 나이가 많을수록 높다. 발병 평균 연령은 50대이며, 여성이 남성보다 배가량 많은 게 특징. 여성은 특히 폐경 후 조심해야 한다. 폐경과 동시에 여성호르몬 분비가 중단되면서 혈관 탄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뇌동맥류가 생길 가능성도 많다.

뇌동맥류는 가급적 파열되기 전에 미리 발견해서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조기발견이 쉽지 않다. 주위 신경을 압박할 정도로 커지지 전까지는 거의 이상 증상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뇌동맥류 파열 환자들은 평소 자신의 뇌혈관의 일부가 기형적으로 부풀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지내다 화를 당하고 있다.

뇌동맥류의 90% 정도는 지주막하 출혈로, 7%는 주위 뇌신경이나 뇌 조직을 압박해 이상 증상을 유발할 때, 3% 정도는 뇌혈관 검사 중 우연히 발견된다. 따라서 중·장년층은 정기 건강검진 때 한 번쯤 뇌혈관 관련 검사도 같이 받아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안 교수는 조언했다.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출혈을 일으키면 둔기로 머리를 꽝 맞은 듯한 느낌과 함께 무척 심한 두통을 느끼게 된다. 이런 증상은 새벽과 아침에 일어날 때, 기침이나 재채기로 두통이 더욱 심해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목 뒤쪽의 통증과 요통이 있을 수도 있다.

일단 뇌동맥류가 갑자기 파열되면 약 45%는 5∼10분 정도 정신을 잃는다. 이는 뇌출혈로 인해 갑자기 뇌압이 상승하고, 뇌혈류가 일시적으로 중지되기 때문이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뇌혈관센터 홍창기 교수는 “일상생활 중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과로한 경우, 또는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기온이 낮은 날 배변 및 배뇨 때 급격히 혈압이 상승, 파열 위험이 높아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뇌동맥류는 보통 3차원 CT나 뇌혈관 촬영 검사를 통해 진단하고, 크기가 3㎜ 이상이면 발견과 동시에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3㎜ 이하짜리 무증상 뇌동맥류는 지켜보다 더 커지거나 파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손댄다.

치료는 머리를 열고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를 직접 묶어주는 방법과 사타구니의 혈관을 통해 뇌혈관까지 가는 관을 진입시킨 다음 백금 코일로 부푼 꽈리 속을 채워주는 방법이 있다.

뇌동맥류 치료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시간이다. 극심한 두통이 갑작스럽게 나타날 때는 지체하지 말고 병원(신경외과)을 찾아야 화를 면할 수 있다. 홍 교수는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은 속칭 중풍으로 불리는 뇌졸중에 의한 뇌출혈과 마찬가지로 발병 3시간 안에 지혈과 함께 혈종을 제거해야 사망 위험은 물론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