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0-10-31 17:42


(18) 광야에는 바람이 분다

예수님이 걸어간 길이 마가복음에 나온다. 깊이 읽기에 익숙해지면서부터 마가복음은 나에게 2000년 전의 책이 아니라 오늘의 책이 되기 시작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걸어간 길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과 겹치면서 내 생각을 자극하고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새롭게 결심하게도 한다. 거듭 놀라는 것은 예수께서 걸어간 길이 사람이 보통 걸어가는 길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으레 걷는 길과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다른 것의 핵심이 광야와 연관돼 있다. 1장에 그 상황이 잘 나온다. 마가복음이 말하는 예수의 존재는 처음부터 하늘에 연결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 곧 구세주다(1절). 하늘의 소리가 그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이라고 확인한다(11절). 그런데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길은 철저하게 땅에서 이어진다. 땅의 상황에서 활동하는 사탄과 맞닥뜨린다. 그 상징적 장소가 광야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도시 사회와 대조적이다. 사람의 기술과 문화가 주는 편리함이 없다. 사람 속에서 살도록 돼 있는 존재가 사람이고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게 고독이다. 광야에서 사람은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된다’는 뜻을 가장 밑바닥까지 경험하는 곳이 광야다.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냉대나, 사람은 많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는 소외 정도가 아니다. 광야에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광야 상황의 본질을 깨닫는다. 사람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존재의 뼈마디와 핏줄과 신경계를 파고드는 고독 자체를 체험한다는 말이다.

광야에는 사람이 없다. 광야에 나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광야에 하나님이 계시다. 그리고 사탄도 있다.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낸다(12절). 광야에서 예수는 아주 또렷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사탄과 맞닥뜨린다. 앞으로 예수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 전에 예수는 사람 아닌 존재를 만난다. 하나님과 사탄, 두 존재를 두고 예수는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그래서 광야에서 사람 사회로 돌아온 뒤 예수의 일성(一聲)은 하나님의 복음이었다(14∼15절).

그런데 예수의 길이 다르다는 것은 정작 여기서부터다. 하나님의 길로 입장을 정리한 뒤 예수는 동지들을 부른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대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누가 대적자인가를 보면 의외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대적한다. 사람에게 가장 본능적인 끈으로 연결된 가족과 친족까지 예수의 대적자로 드러난다. 바리새인은 사실 사상적인 동지여야 한다. 가족과 친지와 동향 사람들은 혈연과 지연의 동맹자여야 한다. 그러나 내부자여야 할 이들이 외부자요 대적자가 된다. 또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철저하게 예수 편에 서있어야 할 제자들까지 외부자로 폭로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적자에게 맞서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닌가? 예수는 이들 없이 어떻게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단 말인가? 예수의 길은 처음부터 혼자 걷는 길이었는가? 광야에서 사람들 사회로 돌아왔지만, 예수는 여전히 광야를 걷고 있는 것인가? 이런 얘기가 8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