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박봉월 할머니의 아름다운 수능 도전… “대학 전통의상학 전공이 꿈”
입력 2010-10-29 22:53
박봉월(75) 할머니는 29일 오후 서울 염리동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두꺼운 돋보기를 끼고 세계사 수업을 듣고 있었다. 노트에는 ‘톈진조약, 변법자강운동’ 등 중국 근대사의 주요 사건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박 할머니는 일성여고의 최고령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이다. 박 할머니가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고3 수험생이 되기까지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박 할머니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았지만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생활을 접어야 했다.
“옛날에는 왜 그리도 가난하고 집안일은 많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나 싶어.” 박 할머니는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포목점을 하던 부모를 도와야 했다. 철이 들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졌지만 늘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24세 때 결혼해 상경하면서 다시 공부를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남편과 사별하면서 학업의 기회는 멀어졌다. 이후 30여년간 한복 바느질을 하면서 1남1녀를 키우는 데 삶을 바쳤다.
곡절의 세월을 보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떠나지 않았다. 장성한 딸이 엄마의 마음을 알고 공부를 권했고, 인생 황혼기인 2007년 2년 과정의 일성여중에 입학했다. 학교를 그만둔 지 62년 만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대학 입학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시작하니까 자꾸 욕심이 나대요. 중학교를 마치니까 고등학교, 고등학교가 끝나가니 또 대학을 가고 싶더라고요.”
박 할머니는 20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시험을 앞두고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 원하는 학과에 들어갈 수 있을지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복습을 하고 있는데 자꾸 제2 외국어로 택한 한문 공부만 하고 싶어서 큰일이네요. 국어 수학은 따라가려고 노력은 하는데 힘이 들어요.” 할머니는 한자급수시험 1등급에 한자지도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한자 전문가’다.
박 할머니는 대학에서 전통의상학을 전공하는 게 목표다. 생계를 위해 평생 했던 바느질이 통하는 전공이기 때문이다. “바느질은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어요. 나는 놀토(수업이 없는 토요일)에도 나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인데 대학이 꼭 뽑아주면 좋겠어요.”
박 할머니는 요즘 컴퓨터 배우는 일에도 푹 빠졌다. 방과 후 수업에서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다루는 법을 배운다. “내가 겉은 이렇게 늙었지만 마음은 18세야. 목표가 있고 노력을 하니까 이렇게 건강한 거예요.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계속 배워야 해.” 박 할머니가 속한 3학년 2반의 급훈은 ‘가능이란 노력하는 자의 몫’이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