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리스본조약’ 제한적 개정 합의
입력 2010-10-30 00:38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EU의 ‘미니 헌법’으로 삼아왔던 리스본조약을 제한적으로 개정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향후 유로존 재정위기의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국제통화기금(IMF)과 유사한 유럽형 상설 구제금융제도를 창설키로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29일 끝난 EU 정상회의에서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최종적으로 채택한 ‘결론(Conclusion)’에서 이 같은 내용을 명시했다. 결론은 재정 부실 회원국에 대한 신속하고도 엄격한 제재를 규정하는 각종 법안을 이사회와 유럽회의가 내년 중반까지는 완료할 수 있도록 하자고 못 박았다. 그러나 정상들은 재정 부실 회원국의 경우 EU 이사회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자는 부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결정을 유보했다. 대신 이 사안은 헤르만 반롬푸이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회원국과 협의를 통해 추후 검토키로 한다는 가이드라인만 채택, 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회원국은 재정 부실을 초래한 회원국에는 투표권 박탈은 물론 벌금 등 재무적 제재까지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정례 정상회의가 열릴 때까지 각국 간 이해관계에 따른 논의가 무성할 전망이다.
현재 리스본조약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SGP)’은 회원국들의 재정적자 기준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하, 정부 부채는 60%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대규모 재정적자로 인한 구제금융 지원 이후 유럽권에서는 리스본조약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확산돼 왔다.
이번 회의에서 강경론을 밀어붙여 끝내 회원국들의 동의를 받아낸 인물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메르켈 총리는 “재정 부실 회원국에 제재를 강화하자는 우리의 의지가 퇴색되는 것으로 비치면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우려가 크다”며 “유럽의 위기를 막으려면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리스본조약의 개정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의 경우 기존 조약을 비준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2차례나 실시한 것을 비롯, 일부 다른 회원국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리스본조약의 발효를 위해 8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점을 지적하는 등 시큰둥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편 EU 정상회의는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각국의 보호주의를 야기시킬 우려가 큰 환율전쟁의 장이 펼쳐지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27개국 정상들은 결론에서 “단기적인 경쟁 우위를 도모하기 위한 환율변동 다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에 따라 EU는 오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세계경제 이슈가 되고 있는 환율 문제에 관여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지속적인 경제회복의 토대가 될 경제·금융 거버넌스(협력적인 국정관리 체계)를 주요 논의 과제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