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도 자연계 순환 질서의 일부지요”… 박남준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입력 2010-10-29 17:38


지리산 시인 박남준(53·사진)을 일컬어 ‘생태 시인’이라고 지칭하는 건 그가 2008년 운하 건설 소식을 접하고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을 순례하며, 붓이 아닌 몸으로 먼저 이 땅에 순례의 궤적을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천직이 자연지킴이인 것이다.

그는 많이 떠돌고 많이 보고 많이 노래한다. 거처만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일 뿐, 그는 여기에 있는가 하면 저기에 있다. 여기와 저기 사이에 그가 펴낸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실천문학사)의 그 휴게실이 있다. 하동에서 구례 사이 강물이 휘어드는 곳에 고물 트럭을 개조해 만든 간이 휴게실이다. 게다가 주인아저씨의 여자는 덜컥 암에 걸렸단다.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깊이 모자를 눌러쓴 그 여자는/아저씨를 졸라 간이 휴게소 아래/얼기설기 비닐하우스를 지었다/(중략)/간판도 없는 두어 평 비닐하우스 무허가 옷 가게/어려서나 더 젊어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반짝이는 반짝이 옷”(‘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 일부)

삶을 영위하는 시간 속에서 사람의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쇠잔해져간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반짝이 옷처럼 영원히 붙들지 못한 생의 굽이굽이가 있다. 세상엔 이처럼 붙들지 못할 것들이 지천이다. ‘붙들지 못할 것들을 보라’는 뜻에서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군불견(君不見)’일 것이다. “향기로운 매화의 봄은 그새 가고 마는가/이제 내일의 시간이란/짧다 지천명의 나이”(‘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일부)

지천명의 나이를 육체로 받아들이는 회환의 정서는 어느 날, 수염도 깎지 않은 초췌한 몰골의 시인을 독거노인으로 간주한 보건소 직원과의 해프닝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나이 쉰넷, 사고로 다친 무릎이 쑤시고 절뚝거리며 치통이 자주 양수쌍쌍겸장으로 관자놀이 편두통을 쨉 훅 어퍼컷 카운트 펀치로 휘두른다 온갖 잡문을 써서 꾹꾹 눌러 담은, 월수 삼사십, 한 시인의 경제가 싹 벗겨져 들통 나는 설문 조사당하는 날”(‘독거노인 설문 조사’ 일부)

나이듦도 다름 아닌 자연계의 순환 질서다. 그렇기에 시인은 이 해프닝을 자기 연민으로 끌어내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차라리 유쾌하다고 받아들인다. ‘내 안에 나이가 이만큼 있다’라는 두둑한 감정이야말로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마음의 성숙과 진화다. “낙엽 하나 땅에 떨어졌다/어떤 나비의 애벌레에 몸을 내주었나/삭은 뼈처럼 드러난 잎맥들 방울방울/이슬을 매달아 햇빛을 굴린다/(중략)/가지에서 떨어져 허공을 부유하다/나비를 꿈꾸었는가/놀라워라 저 낙엽”(‘놀라워라’ 일부)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