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숲속에서 숨은그림 찾기… 권혁웅 시집 ‘소문들’

입력 2010-10-29 17:37


소문은 유효기간을 갖는다. 누군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쳤을 때 그 소문은 임금님을 직접 알현한 자에 의해 확인되거나 파괴된다. 소문이란 베일에 싸여 있을 때만 일파만파로 번져들 수 있다. 베일이 벗겨지면 소문은 대개 말장난이거나 입담일 경우가 많다.

시집 ‘소문들’(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권혁웅(43·사진) 시인도 이런 위험 부담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쓰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누가8:8)와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 사이에서 내 시는 위태로웠다. 소문이란 숨기면서 풀이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숨은그림찾기 식의 글쓰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숨은 그림이 배경 그림보다 못났다는 데 있었다. 이걸 싹 지워버려?”

문학적 엄숙주의에 비춰 자칫 괜한 짓을 했다는 자책 속에서도 그는 여타 시집의 두 권 분량이나 되는 수많은 ‘소문들’을 시집에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소문들’ 연작시가 눈길을 끈다.

“용산에서 발흥했으며 우면산의 검경(劍京), 발치산의 공산(恐汕)과 함께 3대 조폭이었으나 동이와 오환의 대살육 때에-이를 육이오(戮夷烏)라 부른다-검경과 연합, 공산을 궤멸하여 장안을 장악했다. 정직한 자를 잡아가고 가난한 자를 태워 죽이며 속이는 자에게 쌀을 주고 부유한 자의 곳간을 지켜 그 악명이 자자하다.”(‘용역-소문들 유파편’)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 사태를 패러디한 또다른 소문으로서의 시편이 용역이다. 용산 사태에 투입됐던 ‘용역(用役)’과 발음이 같은 ‘용역’은 ‘용이 높이 솟는다’는 뜻이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용역’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시인이 시적 대상으로 삼으려 한 건 군화발과 몽둥이로 중무장한 ‘용역(用役)’일 것이다. 이처럼 익숙한 어휘에 한자의 독음을 붙여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시도함으로써 관습적 규약으로 받아들여지는 행태를 비틀어버리는 게 시집 ‘소문들’이 지향하는 언어의 입체감이다.

권혁웅은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자명한 기호들의 베일, 어쩌면 이 세계를 덮고 있는 베일을 벗기는 과정이기도 한다. ‘소문들’은 이렇게 왔다가 간다. 소문이란 으레 그러하듯 한바탕 휩쓸고 나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세계에 대한 의심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의 시선만은 그 ‘소문들’에 귀를 기울인 자들에게는 깊숙이 각인될 것이다. 권혁웅이 전하는 ‘소문들’은 “없으면서도 있고, 없지만 있고, 없어짐으로써 있는” 것이 된다. 실제와 소문의 아득한 낙차가 즐거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게 이번 시집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