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지진’… 축대에 깔린 쌍둥이, 엄마는 하나만 살릴 수 있었다

입력 2010-10-29 17:28


제목은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연상시키지만, ‘대지진’을 그런 식으로 분류하는 건 옳지 않다. 이 영화는 1976년 탕산 지진으로 삶이 무너져 내린 가족, 더 구체적으로는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사랑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다.

넉넉하진 않지만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던 일곱 살배기 쌍둥이 남매 ‘팡떵’과 ‘팡다’의 인생은 어느 날 들이닥친 지진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아버지는 사망했고, 남매는 같은 축대에 깔려 한 쪽을 들어올리면 다른 한 쪽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어머니는 ‘둘 중 누구를 구할지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사람들의 다그침에 한참을 울부짖다 아들을 택했다.

버림받은 딸. 이 소재는 우리나라에서도 바리공주 이래 낯설지 않은 서사지만, 펑샤오강 감독은 현대의 배경을 덧입은 내러티브에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을 덧붙여 이야기로 하여금 설화와 실화의 중간지대를 아슬아슬 오가게 만들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남은 평생을 희생양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혹은 당연하게도) 죽은 줄만 알았던 딸 팡떵은 살아 있었다. 축대 밑에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팡떵. 그녀는 정신을 차린 후에도 엄마를 찾아가지 못한 채 인민군 장교 부부에게 입양된다.

이 같은 서사의 여주인공들은 늘 그런 것일까. 팡떵은 저 스스로 쉽고 편한 삶을 포기한다. 스산한 운명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면서도 쉽게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는 그녀. 카메라는 탕산 대지진부터 쓰촨 대지진(2008년)까지의 32년을 조용히 따라가고, 가족 개개인이 저마다의 인생을 살면서도 마음 한 편에 자리한 저릿한 서글픔을 끝내 간직하는 모습을 비춘다. 그리움과 회한이 뒤엉킨 삶의 무게를, 두 여배우 쉬판과 장징추는 혼을 불사르는 듯한 열연으로 표현해냈다.

24만여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대규모 천재지변, 가슴 뭉클한 가족애, 32년이라는 긴 시간.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다루면서도 산으로 가지 않고 응축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감정을 중간 중간 쓸데없이 소모하지 않은 덕에, 결말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동도 배가 됐다. 중국 작가 장링이 쓴 소설 ‘여진’이 원작이기도 하지만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문학인 듯 느껴지는 작품이다.

중국에서는 역대 최고인 6억6000만위안(1130억여 원)의 흥행수입을 기록했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하다. 전체 관람가. 다음달 4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