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50만t 달라” 왜… 北 사정 절박? 南 관계개선 의지 떠보기?
입력 2010-10-28 18:12
북한은 26∼27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쌀 50만t을 요청했다. 50만t은 햇볕정책을 펼친 지난 정부 때 지원한 것과 비교해도 큰 규모다.
현 정부 들어 북측이 수치를 제시하며 대규모 쌀 지원을 공식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8월 말 신의주에 대한 수해 지원을 제안했을 때도 북측은 쌀과 시멘트 등을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적십자회담에서는 달랐다. 북측 대표단은 회담 첫날 쌀 50만t을 거론했고, 이튿날에는 “때를 놓치지 말라”며 우리 측을 압박했다. 우리 측 회담 관계자들은 북측이 쌀 50만t을 주장하자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한적이 신의주 수해 지원용으로 보낸 쌀 5000t의 구매 가격이 77억원임을 고려하면 50만t은 무려 7700억원어치다.
북측이 다소 무리해 보이는 쌀 50만t을 주장한 것은 그만큼 내부 사정이 절박함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28일 “우리 정부가 매년 지원하던 것이 없어졌고, 국제사회의 지원도 많지 않다”며 “북측이 필요한 최대치를 불러본 것 같다”고 말했다.
북측은 2000년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식량난을 호소하며, 쌀 100만t을 요청했었다. 그해 우리 정부는 30만t을 지원했고, 이후 2005년 50만t을 제외하고는 2007년까지 매년 40만t을 줬다.
북측의 요구에는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시험해 보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태에 따른 남북경색에서 벗어나 고위 당국간 회담 등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대북 쌀 지원의 실현 여부는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와 여론의 향방에 달려 있다. 현재로선 정부는 요지부동이고, 찬반 여론은 팽팽하다.
민주당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쌀·비료 지원,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패키지로 해결하기 위해 남북 고위급회담을 즉시 개최하라”고 지적했다. 반면 유종하 한적 총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대규모 지원이)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드러났다”며 “과거 1조원 이상 지원했는데 지금까지 이산가족이 몇 명이나 만났느냐”고 반문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