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후손에 ‘숲’을 선물하다…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입력 2010-10-29 00:23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이경준 김의철/기파랑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한반도는 푸른 카펫이 깔린 듯 하다. 건물이 빼곡한 도시를 빼면 어디라도 숲이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광경이다.
하지만 우리 땅에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고 숲이 우거지게 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나무를 이용해 건물을 지었다. 나무는 가장 중요한 연료원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이후 인구가 늘면서 나무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이 전국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갔고, 6·25전쟁 포화 속에서 전국의 산과 들은 불타고 파헤쳐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우리 땅은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국이 사막화될 위기였다.
산림청 연구원과 서울대 교수를 지낸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와 서울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한 김의철씨는 이 책에서 왜 박 전 대통령이 국토녹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삼았으며 어떻게 추진했는지를 들여다봤다. 산림녹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박 전 대통령의 면모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후대에게 어떤 자연을 선물할지 고민할 것도 주문한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군사정권은 바로 새로운 법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1961년 12월 27일 제정된 산림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산림 관련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군사정권이 만든 법 중 반공법, 수출조합법, 공업표준화법 이후 4번째다. 그만큼 산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은 1967년에는 농림부 안에 한 부서로 있던 산림국을 산림청으로 독립시켰다. 연료림 조성, 사방사업, 산불방지, 송충이와 솔잎흑파리 방제, 도벌(盜伐) 방지, 화전 행위 금지 등을 주요 업무로 설정했다. 수명이 짧고 빨리 자라는 아까시나무를 중심으로 연료림 조성이 시작됐다. 성장 속도가 빠른 이태리포플러나무도 하천유역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했다. 박 전 대통령은 각종 연설이나 기고에서 산림녹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가하면 직접 현장을 챙기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 전 대통령의 치밀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5년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대구로 내려갈 때 박 전 대통령은 고속도로 주변 구릉과 절토부분의 조림 및 조경에 대해 24건의 지시를 내렸다. 거리로 따져 9㎞당 1건, 6분마다 1건씩 지시를 내린 셈이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순시하다가 없어진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그 나무는 어디갔냐”라고 물은 일도 있었다.
1973년 1월 15일에는 제3대 산림청장으로 손수익씨를 임명하고 2월 23일 비상 국무회의를 거쳐 산림청을 내무부로 이관했다. 도벌, 화전 행위를 더 강력하게 막으려는 의지였다. 박 전 대통령은 도벌을 5대 사회악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무부는 지방행정조직과 경찰행정조직을 총괄하는 정부부처이기 때문에 강하게 단속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도 발표한다. 향후 10년간 전 국토를 완전히 녹화시킨다는 목표로 100만헥타르(ha)에 21억본을 조림한다는 계획이었다. 산림보호와 관리는 도지사와 시장, 군수가 하고 단속은 경찰서장이, 기술지도는 산림공무원이 맡는 식으로 분업이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국토녹화를 2단계로 생각했다. 비가 오면 토사를 쏟아내 홍수피해를 초래하는 민둥산을 없애고, 동시에 연료문제를 해결하는 게 1단계였다.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이 추구하는 목표였다. 치산치수에 성공하면서 홍수피해도 줄었고, 물을 저장하는 능력도 높아져 안정적인 쌀농사가 가능해졌다.
2단계는 경제수종으로의 전환이었다. 산지이용 장기계획, 경제림 조성, 향토수종 개발, 해외 산림자원 개발 등을 목표로 79년부터 2단계 국토녹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그해 10월 26일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목표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1965년 5월 존슨 대통령의 초청으로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다.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그는 며칠 뒤 동양통신 김성진 워싱턴 특파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미국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저 푸른 숲 말이야. 저것 참 부러워. 미국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다면 난 저 푸른 숲을 몽땅 가져가고 싶어.”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