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임순만] 혁명의 오케스트라
입력 2010-10-28 17:48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1783년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볼리바르는 한 국가가 아닌 남미 대륙 전체를 해방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평생을 살았다. 그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다섯 나라를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해방시켰고, 독립에 대한 의지가 잠들어 있던 라틴 아메리카를 깨운 혁명가다.
남미에 그의 이름을 딴 국가가 있고 국제공항이나 대학, 지형이나 교향악단, 화폐 단위나 경제조약에도 그의 이름이 곧잘 붙는다. 라틴 아메리카 공화국의 꿈을 되살리고자 하는 남미인들의 희망의 표시다. 그러나 가브리엘 G 마르케스가 소설 ‘미로 속의 장군’에서 묘사하듯 그의 삶은 불행하게 끝났다.
30만명의 아이에게 악기를
라틴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은 하나로 소통되기에는 깊은 오지였고, 서로 다른 인종 혼혈과 지역 간 대립의 벽이 너무 높았다. 무엇보다 미국과 영국이 라틴 아메리카의 통합을 원치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는 1820년대에 20여개 국가로 나뉘었고 볼리바르는 목적지 없이 떠돌다 1830년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범 아메리카주의’를 꿈꾸는 볼리바르의 제자들은 수없이 등장했다. 여기 새로운 한 사람의 후예가 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1) 박사. 그제 제10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베네수엘라 경제학자다.
아브레우는 악기를 선택했다. 1975년 거리의 아이들 11명을 모아놓고 차고에서 악기를 가르친 것이 시작이다. 아이들 중에는 전과 5범 소년도 있었다. 범죄에 물든 아이들이 무질서를 버리고 함께 화음을 맞춘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무상으로 악기를 지급하고 가르치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는 더 많은 빈민층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끈질기게 정부를 설득, ‘엘 시스테마(El Sistema)’라는 예술교육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 35년간 30만명의 아이들이 이 국립 음악 시스템을 거쳐 갔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00여개 오케스트라가 존재한다고 한다.
빈민가 아이들에게 악기를 나눠준다. 이 전설적인 스토리는 음반과 책,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지구촌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정점으로 하는 엘 시스테마가 유명한 것은 전설이 아니라 음악적 수준 때문이다. 2007년 본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에서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3번과 7번 공연실황 동영상은 세계 최고의 명반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갖는다. 왜 빵이 아니라 음악이냐고. 더구나 오케스트라는 스타급 솔리스트를 배출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아브레우 박사는 답한다. “가난과 관련해 가장 참담한 것은 빵이나 집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될 것이라는 공적인 존중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음악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 자신의 어려움과 맞서 싸울 때 그 에너지는 희망으로 바뀐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협동과 이해를 가르치면 그 희망의 에너지가 베네수엘라를 넘어 남미 대륙을 바꾼다.”
공정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마약을 운반해주고 푼돈을 받거나 폭력집단에 연계돼 흉기를 들고 있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친다는 발상은 신선하다. 우리 같으면 국·영·수를 가르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기악이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생각해왔다. 수억원에 이르는 유명 바이올린이 서민들을 주눅들게 하고, 한 시간에 수십만원 하는 레슨비가 음악을 떠나게 한다.
아브레우는 우리의 그런 통념을 바꾸게 만든다. 음악은 빈부 격차를 넘어선 곳에 있다. 우리가 그동안 음악을 공정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다시 온당히 인식해야 할 대상은 적지 않다.
임순만논설위원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