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단풍잎 같은 인생
입력 2010-10-28 17:47
여행 길에 소설 ‘生의 이면’을 가방 속에 넣어 갔다. 책 속에는 화석처럼 굳어버린 단풍잎이 박제되어 있었다. 소설에서 이승우 작가는 앙드레 지드의 말을 인용한다.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마라. 결코 머물지 마라. 너의 집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나도 나의 집안, 나의 방, 나의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발길이 어느덧 동학사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리는 삶의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끊긴 길 앞에서 주저앉기도 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하며 허망함이 우리 영혼을 운무처럼 둘러싸기도 한다.
‘生의 이면’은 소설가인 ‘나’가 다른 한 소설가(박부길)를 추적하여 그 삶을 재구성하는 평전형식의 소설이다. 박부길은 15년 동안 열 권의 장편소설과 일곱 권의 중단편집, 그리고 세 권의 에세이집을 낸 중견작가이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폐쇄공포증을 가진 소설가가 운명적인 사랑과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승화시키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사람의 몸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들어 있는 것인지, 쏟고 또 쏟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그 눈물은 물론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빗속에 쫓겨나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해서도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뼛속을 시리게 하는 외로움이었고, 사무치는 혈육에의 그리움이었다. 또 그것은 무정형의 세상, 온통 비밀투성이고 규명되지 않은 수수께끼들과 모순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야 하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울분이기도 했다.”
박부길의 삶을 엿보면서 허망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쓸려간다. 그의 여행이 무위로 끝난 뒤 슬픔에 빠진 것처럼. 사람은 모든 불화의 주체이고 조건이 된다. 따라서 사람의 적은 사람이지만 사람 때문에 마냥 즐겁기도 하다. 불을 끄고 어두운 방안에 누워있으면 주위가 환해지는 경험을 한다. 밝음 속에 있는 현실보다 더 잘 보이지 않는가. 캄캄한 적막이 세상의 전부가 된 것에 대한 황망함을 느끼다가도 그 속에서 보이는 진실함은 더 값진 것이리라.
청명한 가을볕이 반사되어 떨어진 낙엽 위로, 낙엽 사이마다 노랗게 내려앉는다. 각자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동학사로 걸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촘촘해진다. 내 삶의 시계는 어떤 시기를 중심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도는가.
외로움을 눈으로 겪게 하는 소설 ‘生의 이면’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단풍잎 같은 존재 때문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단풍잎을 뒤집으면 보여주고 싶지 않는 퇴색한 빛깔과 거친 흔적이 새겨 있듯이 그것마저도 우리가 껴안아야 할 삶이고 우리네 인생인 것을.
고 피천득 선생은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언제 되돌아보아도 아름다웠노라고 추억할 수 있는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 오늘을 사는 지혜이리라.
정윤희(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