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취준생
입력 2010-10-28 18:05
미국에 가본 적 없고 책으로만 본 얘기니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나 그 나라에서는 구직자가 회사에 제출하는 이력서에 사진을 아예 안 넣는다고 한다.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나라인 만큼 사진을 넣으면 인종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진이고 뭐고는 배부른 소리. 2009년 3월부터 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됐다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비정규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먹고 살려면 뭐든 못 하겠냐고 알바 사이트를 치는 ‘취준생’, 취업 준비생들은 여기서도 서럽다. 서빙 일자리 같은 건 얼핏 구하기 쉬울 것 같지만 무슨 소리. 용모 단정에 25세 이하일 것은 기본이다. 엄연히 차별금지법 위반인데도 안 써놓은 곳이 없다.
하기야 어려 보이면 그까짓 나이 좀 속여 볼 수도 있겠으나 임금체불 등 다른 악조건이 발생하기도 쉽다. 게다가 야멸치게도 별다방이니 콩다방이니 하는 대형 체인점은 10원도 더 안 주고 딱 최저임금 4110원만 준다. 4110원 가지고 요즘 제대로 된 밥 한 끼나 사먹을 수 있느냐는 둘째 치고, 다른 데 가도 고작 4500원이니 그래도 알바 하려는 이들은 이왕 이름 있는 체인점에 가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답게 임금 차이 정도는 거뜬히 뛰어넘는 놀라운 복리후생이 있어서는 당연히 아니다. ‘동네 카페에서 반년 일했습니다’보다는 ‘스타벅스 파트너(알바가 아니고 파트너라고 부른다)로 6개월간 근무했습니다’가 이력서에 쓰기도 그렇고, 그나마 좀 나아 보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원해서 혹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하는 알바생 혹은 취준생들이 계속 스스로를 위로하며 주문처럼 외우는 말은 여기는 잠깐 머물렀다 갈 곳, 사회 경험을 쌓고 사회 공부를 하는 곳, 뭐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경기 불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이고 청년실업을 비롯한 일자리 문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서 안정적 고용이 어렵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일자리들은 잠깐 머물렀다 가는 곳이 아니라 계속 머무르는 혹은 머물러야 할 곳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하는 쪽에서도 취업 하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보는 게 현실적일 수 있겠지만 열정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태도는 포기, 루저, 뭐 그런 것밖에 안 될 것이다.
여기는 잠깐 머물렀다 갈 곳이라는 주문은 부려먹는 쪽에서도 아주 잘 써먹는다. 임금이 체불된 사례 중 흔히 보는 것 하나가 고용주 쪽에서 사람 사이의 ‘정’을 강조하면서 참아 달라고 했다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겪으면 구인광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문구가 좀 무서워진다. ‘가족처럼 일하실 분, 늘 명랑 쾌활한 사람, 매사 긍정적이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 원함.’
이런 사람은 받는 돈이 좀 적다 싶어도 매사 긍정적이며, 적은 돈에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가족의 사업을 돕는 마음으로 일할 뿐이고, 월급이 좀 밀린다 하더라도 가족의 어려움을 보듯 명랑 쾌활한 태도로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 싶어, 움찔한 다음 기죽는 청년백수는 정녕 이 땅에 나 하나뿐이란 말인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