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노상에서’ 펴낸 서울대 신문수 교수… “美 제대로 알리고 싶어요”
입력 2010-10-28 17:45
미국학의 권위자가 논문이 아닌 미국 문화·역사 탐방기를 펴냈다. 서울대 신문수(58·영어교육과) 교수 이야기다. 27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신 교수에게 왜 탐방기냐고 묻자 웃으며 “30년간 미국학을 다루면서 연구 논문을 숱하게 썼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서”라고 대꾸했다.
신 교수는 “미국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데도 정작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미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책을 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해준 우방에서부터 민족분단의 씨앗을 뿌린 제국,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의 총아이자 세계금융을 지배하는 경제대국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지만 그 진면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미국에 대해 물어보면 할리우드 영화랑 재즈, 팝송만 얘기합니다. 심지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자 먹을거리 주권을 빼앗는 약탈자’라는 말도 튀어나오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죠. 일부만 보고 미국을 판단해선 우리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그는 21세기에도 한국은 미국과 동맹 및 경쟁관계를 이어가야 하는데,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선 우선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은 2권에 걸쳐 미국사의 이정표적 사건이나 중요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1권은 월트 롤리의 로어노크 식민지 건설에서부터 남북전쟁 이전까지를, 2권은 남북전쟁 무렵부터 20세기 후반 흑인저항운동 시대까지를 다뤘다.
탐방기는 신 교수가 2003∼2004년 미 듀크대에서 체류하면서 구체화됐다. 귀국해서는 미국에서 학회가 열릴 때나 방학 때 현장을 방문했다. 먼 나라인데다 시간과 돈을 쪼개다보니 책을 내도되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7년이 걸렸다.
미국학 연구자가 쓴 만큼 책에는 일반 여행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역사적 사건에 얽힌 정서가 잘 녹아있다. 백인문명에 의한 인디언 침탈 역사를 보여주는 운디드니(WOUNDED KNEE) 학살 편이 그렇다.
“운디드니에 부는 바람은 참으로 황량했다. 길은 패어 있고, 석축은 허물어져 있고, 표지판은 녹슬어 있었다. 한때 이 땅을 지배하던 한 종족의 문명이 사라진 무대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역사의 흔적이라고는 도로가의 녹슨 기념판이 전부였다.”(2권, 129∼130쪽)
책을 내면서 어려웠던 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신 교수는 주저 없이 “사진”이라고 말했다. 돈과 시간은 어떻게라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중요 유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사진으로 잘 담지 못할 때 속이 상했다고 했다. 신 교수는 끝으로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지적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우리 생존을 위해 긴요한 일”이라며 “내 노력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글·사진=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