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아랍 ‘천년 만의 재회’ 세계 경제질서 바꾸나… ‘실크로드의 부활’

입력 2010-10-28 17:37


실크로드의 부활/벤 심펜도르퍼/지식의날개

2001년 9·11테러 이후 세계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자 미국이 움켜쥐었던 세계경제의 질서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아랍권은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여기고 증오하는 미국과 서구권을 등지고 정치·외교적으로 거의 얽히지 않은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새 소비시장을 갈망하던 중국도 강력한 오일 달러로 금융계 거물이 된 아랍과 손을 잡고 세계경제의 중심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황하에서부터 저 멀리 시리아의 다마스쿠스까지 실크로드를 타고 활발히 교류하던 중국과 아랍 문명이 1000년 이상이 흐른 지금 극적으로 재회하는 순간이다.

홍콩의 스코틀랜드왕립은행에서 중국 파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있는 저자는 현장 경험을 살려 ‘실크로드의 부활’을 하나씩 증명해 간다. 명탐정 셜록 홈즈처럼 실낱같은 경제적 사건을 추리하듯 엮고 직접 현장에 찾아가 확인한 뒤 세계경제의 새로운 흐름으로 도출하는 글에는 박진감이 넘친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책은 베이징과 이우(義烏), 리야드와 카이로 등 다양한 배경을 넘나들며 중국과 아랍권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다각도로 살핀다. 옛 실크로드가 개인 무역상들이 개척한 수천 갈래의 길로 이뤄진 것처럼 부활하는 실크로드 역시 중국과 아랍을 오가는 개인 무역상이 주로 활약하는 곳이라는 주장이 눈에 띈다.

1장 중국 저장성 이우시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을 보면 신문에는 실리지 않지만 서서히 접합점을 확장하며 분명 새로운 흐름을 일구고 있는 두 거대 세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실크로드의 종착역으로 인구 100만도 되지 않는 이우시는 9·11테러 이후 아랍 무역상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비자 규제로 미국 여행이 힘들어진 아랍의 무역상들이 이우를 찾은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아랍 사람들이 애틀랜타나 시카고 방문을 꺼린다는 사실에 안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는 변했다. 아랍 무역상들이 서방 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의 이우를 찾게 된 것이다. 2004년만 해도 이 도시에는 아랍 식당이 세 개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8년에는 거의 20배로 늘었다. 이는 유럽에는 불행한 일이다. 아랍 무역상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유가는 최고로 치솟았으며 아랍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24∼25쪽)

실크로드의 부활은 중국의 아랍방송과 아랍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알자지라 방송의 베이징 지국 에자트 샤흐루르 국장은 중국 국영방송에서 빌려준 장비를 사용해 중국 관련 특별 프로그램인 ‘중국의 창’을 제작해 크게 성공한다. 며칠에 걸쳐 3시간 동안 방영된 프로그램은 아랍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알자지라의 앵커는 방송 내내 중국 외교부와 문화부, 중국 국제 라디오 방송 등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중국 관료들은 모두 아랍어로 인터뷰를 했다. 아랍인들은 “어? 중국인들이 우리말을 꽤 잘 하는군”이라며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이는 미국의 경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압데라힘 푸카라는 알자리라 방송의 워싱턴 지국장이다. 모로코 출신인 그와 통화를 했다. 나는 알자지라 방송과 아랍어로 정례적인 인터뷰를 한 미국 관료의 수를 물었다. 그는 ‘한 명도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208쪽)

여러 해에 걸쳐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아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이 아랍어를 하는 관료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랍권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통상부 정규직원 중 86%가 아랍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 불거졌던 리비아와의 외교 갈등도 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저자는 실크로드 부활애는 정치와 경제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중국의 정책 기조가 큰 도움이 됐다고 분석한다. 중국 정부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더라도, 일본 기업들이 중국 투자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국이 아랍세계에서 역사적인 책임이 거의 없다는 점도 중국과 아랍을 쉽게 친구로 만들고 있다.

중국어와 아랍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국인이 더럽고 지저분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전하는 이야기들은 다른 경제연구서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점이다. 그렇다고 아랍에서의 중국 활약상을 과장하지는 않는다. 시리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미국의 경쟁자들에게 도전하는 중국 자동차에 대해 저자는 “예전 중국 실크의 유명세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신랄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슬람의 금기인 젊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 여성들이 ‘전족’의 악습을 벗고 경제성장의 한 축이 됐으니, 이슬람 여성들도 ‘히잡’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아랍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1600년대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이 번성할 때 세계경제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미국은 지금 세계경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1600년대 세계경제의 29%를 차지하던 중국은 1980년대에는 3%로 떨어졌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아랍과 중국이 손을 잡고 미국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