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잡을 수 있겠어?”… ‘슈퍼스타 J’ 를 찾아라 LA경찰, 진돗개 오디션

입력 2010-10-28 17:58


진돗개의 섬, 전남 진도. 여기 사는 진돗개는 8000마리쯤으로 파악된다. 진돗개 4마리를 뽑아 미국으로 데려가겠다는 미국인 2명이 이 섬에 들어온 건 지난 25일. 로스앤젤레스경찰국(LAPD) 소속 경찰견팀(K9팀) 트레이너들이다. 경쟁률 2000대 1. 경찰견으로 육성할 ‘슈퍼스타 J(Jindo dog)’를 찾기 위한 오디션이 시작됐다.

진도에서 태어난 진돗개는 6개월이 넘으면 모두 심사를 받는다. 60점 이상 받으면 진돗개사업소에 등록돼 관리대상이 된다. 이들을 ‘등록견’이라고 부르는데, 2500마리쯤 된다. 등록견 중 심사점수가 70점 이상인 암컷은 재심사를 받는데 여기서 통과되면 ‘기초견’으로 지정된다. 혈통보존을 위해 특별 관리되는 기초견은 260여 마리다. 기초견과 심사점수 80점 이상의 우수한 수컷이 교배해 낳은 강아지 가운데 생후 3개월 미만이라야 ‘슈퍼스타 J’ 본선 무대에 설 수 있다. 3개월 이상이라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특별케이스로 본선에 오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추린 본선 진출자는 모두 50마리.

26일 오전 10시. 전날에 이어 강아지 주인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진돗개사업소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며칠 전 진돗개사업소로부터 오디션에 참가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날 오전에만 15마리, 오후에 10마리가 테스트를 받았다.

심사위원은 K9팀 소속 수석 트레이너로 개 훈련 경력이 12년 된다는 더글러스 롤러 경사와 제프 밀러 경관. 둘은 개 훈련장에 강아지들을 풀어놓고 테니스공을 던지거나 줄에 묶은 공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면서 반응을 관찰했다. 흰 수건이나 오렌지색 천을 물도록 하는가 하면, 목에 줄을 묶어 같이 달려보기도 했다. 반응이 뛰어난 강아지가 발견되면 주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경우에는 어미 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롤러 경사는 “에너지가 있는지, 집중력이 있는지, 사냥능력이 있는지 등을 관찰하고 있다”며 “우리는 사납고 공격적인 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LA경찰국 K9팀은 미국에서도 유명한 경찰견팀이다. 다른 경찰서에 비해 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자체 트레이닝센터를 가지고 있다. K9팀은 개와 경찰관이 한 조를 이뤄 활동하는데, 총 18개조가 운용되고 있다. 보유 경찰견은 24마리. 이들이 연간 1000건이 넘는 사건에 투입된다. 경찰견이 나서는 경우 범인 검거율은 55%에 이른다. 그 중 절반은 개가 범인을 물어서 잡는다고 한다.

K9는 30년 전 창설됐다. 미국은 총기소지가 합법화돼 있어 사건현장에 경찰관을 곧바로 투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찰견이 먼저 들어가 범인을 물거나 코너에 몰아넣은 다음, 경찰관이 들어가 체포한다. 마약이나 폭탄 탐지에도 경찰견이 활용된다. 그동안 경찰견으로 주로 이용된 개는 독일 셰퍼드. LA경찰국도 셰퍼드를 쓰다가 요즘에는 전부 벨기에산 말리노이즈로 교체했다. 셰퍼드가 대중화되면서 공격성이 약화된 데다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오전 심사를 통해 2마리를 골라낸 후 다음날 결선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6월 10일생 백구 ‘초심이’와 진돗개사업소에서 행사용으로 키우는 10개월짜리 황구 ‘동이’. 초심이는 유난히 공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집중력이 높았다. 동이는 나이가 많았지만 용맹성과 자신감이 두드러져 주목을 받았다. 롤러 경사에게 심사평을 부탁했다.

“진돗개들을 보니 영리하다(intelligent)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좀 순한 것 같다. 현재로선 범인을 잡는 ‘패트롤 독(patrol dog)’보다는 마약이나 폭발물을 찾는 ‘디텍션 독(detection dog)’에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천연기념물 제53호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명견 진돗개를 특수견으로 키워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국내에서 인명구조견이나 군견으로 훈련시켜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 주인만 따르는 특성, 다른 동물에 대한 공격성 등이 늘 문제가 됐다. 일부에서는 진돗개의 특수견 실험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국견협회 우무종 총재의 생각은 다르다. 우 총재는 “진돗개는 셰퍼드보다 더 영리하고, 어떤 사냥개보다 돌격성과 용맹성이 좋다”며 “경찰견 등 특수견으로 이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많다”고 주장한다.

진돗개가 경찰견으로 훈련받는 건 처음이다. 국내 경찰견도 셰퍼드, 말리노이즈, 리트리버 등 전부 외국종이다. LA경찰국이 진돗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김철희씨 등 LA 교민들의 노력 덕분이다. 진돗개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목적을 가진 ‘진돗개 명견화 사업단’(2008년 지식경제부가 지역연고 육성산업 차원에서 선정)의 미국 마케팅을 맡은 김씨는 LA한인회와 함께 ‘진돗개 경찰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경찰견이 되면 진돗개 홍보가 저절로 이뤄지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씨 등은 LA경찰국, 글렌데일경찰국 등을 방문해 진돗개를 소개했다. 새로운 경찰견을 찾던 LA경찰국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이번 방한이 성사됐다.

김씨는 “LA경찰국이 경찰견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며 “거기서 진돗개를 경찰견으로 채택하면 미국 내 여러 경찰서에서 진돗개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LA경찰국의 진도 방문 소식을 듣고 글렌데일경찰국도 자신들이 훈련시킬 개 2마리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미국 경찰이 큰 관심을 보이자 진도경찰서도 진돗개를 경찰견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7일 오후. 3일간에 걸친 오디션이 모두 끝났다. ‘대한이’(백색 암컷·8월 20일생) ‘민국이’(백색 수컷·8월 5일생) ‘통일이’(황색 수컷·9월 5일생) ‘브로도’(황색 수컷·9월 1일생) 등 4마리가 최종 선발됐다. 롤러 경사는 “좋은 개들이 많아서 데려갈 개를 고르느라 마지막까지 고심했다”며 “공을 가지고 놀 때 집중력이 강하고 반응이 빠른 개들을 선발했다”고 말했다. 나이 든 개들은 이미 ‘사회화’가 끝난 상태라는 이유로 배제했다.

4마리 중 대한이와 민국이는 28일 서울에 올라와 1박한 뒤 29일 롤러 경사 일행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LA경찰국으로 간다. 통일이와 브로도는 진돗개사업소에 남아 있다가 글렌데일경찰국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한반도 남서쪽 말단의 섬 진도에서 난 ‘촌놈’ 진돗개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대한이와 민국이가 미국에 가서 K9팀 멤버가 될지는 6개월 후에 결정된다. 둘은 6개월간의 훈련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트레이닝센터 훈련 3개월, 경찰관과 함께하는 현장 적응훈련 3개월이다. 실제 상황에서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돼야 경찰견으로 임명된다. 경찰견이 되면 경찰 배지를 받는다. 그러나 훈련과정에서 실패하면 한국으로 반환된다.

28일 아침 진돗개사업소 앞에는 주민들이 나와서 먼 길 떠나는 대한이와 민국이를 환송했다. 한 노인은 “아들 키워서 유학 보내는 심정이 이럴까”라고 중얼거렸다.

진도=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