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버린 음식쓰레기, 그램 단위로 추적한다
입력 2010-10-28 17:55
‘RFID 종량제’도입… 30년 전쟁 끝나나
2010년 11월. 서울 양평2동에 사는 A씨는 영등포구에서 나눠준 3ℓ짜리 용기에 음식쓰레기를 담았다. 음식쓰레기에 해당하지 않는 양파껍질, 복숭아씨, 생선뼈 등은 꼼꼼히 가려냈다. 최대한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다. 7961세대가 거주하는 양평2동 구석구석엔 음식쓰레기 수거기 176대가 설치돼 있다. 45세대당 하나꼴이다. A씨가 용기를 수거기에 넣자 무게가 자동 측정된다. 교통카드로 대금을 결제하자 용기가 비워졌다. 기계는 용기에 달린 RFID(무선정보인식장치)칩을 통해 A씨를 인식한 뒤, 그가 이날 얼마만큼의 음식쓰레기를 배출했는지 한국환경공단이 관리하는 중앙 서버로 전송했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영등포구가 다음달부터 양평2동에서 시범 실시할 ‘음식쓰레기 RFID 종량제’ 수거 시스템이다(무게별 과금 부과는 2012년 1월부터 시행). 어느 집에서 얼마만큼 음식쓰레기를 배출했는지 1g 단위까지 알아내 배출량에 따라 요금을 물리려는 것이다.
양평2동 시범 실시에 드는 돈만 수거기 설치비, 용기 제작비 등 3억3000만원이다. 이렇게 추가 비용을 들여 음식쓰레기 배출량까지 국가가 세대별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쓰레기와의 전쟁사를 통해 그 이유를 추적해본다.
한국에서 음식쓰레기란 무엇인가
한국이 유별난 건 사실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음식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대부분 국가에선 필요한 지방자치단체만 자율적으로 실시한다. 음식쓰레기 주무 부처인 환경부 관계자는 “외국은 퇴비 수요가 있는 지역에서 음식쓰레기, 낙엽 등을 ‘유기성 폐기물’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아 퇴비로 만드는 정도다. 음식쓰레기 배출량에 관해 전국 통계를 가진 나라도 없다”고 단언했다.
생활쓰레기 중 음식쓰레기를 가려서 버리는 것만 해도 특별한데, 한국은 ‘누진제’가 적용된 종량제까지 꿈꾸고 있다. 집집마다 칩이 달린 음식쓰레기 수거 용기를 나눠주고 버릴 때마다 무게를 재면, 어느 집에서 얼마만큼의 쓰레기를 버렸는지 완벽히 파악된다. RFID칩을 통해 이런 정보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갖추려하는 건 온전히 누진제 실시를 위해서다. “음식쓰레기량에 따라 수거료를 차등 부과한다 해도 겨우 한 달 몇 백원 차이에 불과하다.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수거료 누진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종량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정부 얘기다.
‘음식쓰레기 줄이기’에 무관심한 국가는 없다. 자원 낭비를 막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21세기 트렌드에 딱 들어맞는 주제다. 하지만 왜 한국만 유난을 떠는 걸까.
“매립장 문제가 컸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땅이 넓으니 사람이 안 사는 곳에 매립장을 짓기 쉽고 매립 기술도 우리보다 앞섰죠. 한국은 인구가 급증해 쓰레기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매립장은 도심 한가운데 있었어요. 난지도를 보세요. 이런 곳에 음식쓰레기도 함께 묻다보니 주변이 생지옥처럼 변한 거죠.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음식쓰레기만 별도로 관리해보자’ 이런 생각이 든 거죠.”(환경부 폐자원관리과 전원혁 사무관)
음식쓰레기와의 전쟁 30년史
1983년 도입한 한식업소의 ‘주문식단제’는 음식쓰레기와의 투쟁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식당에서 손님에게 기본 반찬만 내놓고 추가 반찬을 요구할 경우 별도 요금을 받는 제도였다. 하지만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음에도 정착이 쉽지 않았다. ‘야박하다’는 국민 정서 탓이었다.
정부는 사문화된 주문식단제를 대체하기 위해 92년 ‘좋은식단제’를 내놨다. 곰탕이나 갈비탕은 깍두기 등 2∼3가지 반찬, 김치찌개·된장찌개는 3∼4가지 반찬, 불고기백반은 4∼5가지 반찬을 지정하는 식이었다. 주메뉴에 따라 15개로 모형화했다. 좋은식단제를 적용한 식당은 수도료를 30% 깎아주고,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기도 했다. 식탁문화 개선을 위해 빼든 채찍이 실패하자 당근 정책을 쓴 셈이다.
좋은식단제는 현재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음식쓰레기 줄이기에 힘을 보태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지난해 11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탕류의 경우 289개 업소 중 63%인 182개 업소가, 찌개류는 220개 가운데 45.5%인 100개가, 전골류는 153개 중 48.4%인 74개가 좋은식단제에서 제시한 반찬보다 많은 가짓수의 반찬을 내놓고 있었다.
‘반찬 수 줄이기’에 실패한 정부는 이후 ‘음식쓰레기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데 주력해 왔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식당은 스스로 음식쓰레기를 처리토록 했고(93년 감량의무제), 농산물 유통 시 부산물 쓰레기 발생을 막기 위해 포장을 유도하기도 했다(96년 쓰레기 유발 부담금제).
밥상 바꾸기에서 종량제로
‘2005년 벽두부터 전국적인 ‘음식물쓰레기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대폭 강화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적용되는 1월 1일부터 전국 특별시·광역시·시 지역 음식물쓰레기는 직매립이 전면 금지된다. 이에 수도권매립지 등 전국 쓰레기 매립지 운영 기관들은 음식물쓰레기 반입을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선언한 상태….’(2004년 12월 20일 국민일보 ‘새해 벽두부터 음식쓰레기 직매립 전면금지… 또 악취 大亂?’)
정부가 내놓은 큼직한 후속 카드는 종량제다. 시작은 97년이다. 정부는 폐기물관리법을 고쳐 음식쓰레기 직매립(재처리를 하지 않고 직접 땅에 묻는 것)을 금지했다. 일반쓰레기는 직매립이 됐으니 “음식쓰레기와 일반쓰레기를 분리하라”는 의미와 같았다. 이 조항은 8년 유예기간을 거쳐 2005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직매립이 금지되자 자연히 음식쓰레기 분리수거가 시작됐다. 일부 지자체는 자발적으로 음식쓰레기 봉투를 이용하는 종량제를 시작했다. 환경부는 영등포구에서 시범 실시 예정인 RFID 종량제를 감안해 “2012년까지 음식쓰레기 종량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런 흐름의 밑바탕에는 ‘종량제가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최선책’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지난 2월 녹색성장위원회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 8개 부처와 합동으로 내놓은 음식쓰레기 줄이기 종합대책 중 대표적인 것도 ‘종량제’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곳이 전북 전주다.
전주는 한식의 도시다. 한국음식관광축제 전주비빔밥축제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등 한식 관련 3대 축제가 모두 열린다. 일반음식점 3115개 중 한식당이 2565개로 82.3%에 달한다. 서울의 경우 한식당 비율이 50%도 되지 않는다.
‘전주 한정식에는 산·바다·강·들, 육해공군이 다 모여 있다. 서해에서 건져 올린 신선하고 풍성한 해산물과… 탕과 찌개, 나물류와 젓갈 등 제대로 차려진 상차림의 반찬은 무려 30여 가지. 전주 한정식은 음식의 풍성함은 물론 훈훈한 인심까지 더해져 식도락가의 오감을 만족시킨다….’(전주시 홈페이지 ‘맛있는 전주’ 코너)
반찬이 20∼30가지에 달하는 전주 특유의 푸짐한 한정식 문화는 음식쓰레기 발생 원인 1위로 꼽힌다. 전주의 2008년 하루 평균 음식쓰레기 발생량은 288.7t. 음식쓰레기 통계가 있는 233개 시·군·구 가운데 경기도 부천시와 서울 강남구, 송파구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전주를 빼면 10위권엔 유동인구가 많은 수도권 지역뿐이다. 233개 시·군·구 평균은 65t이다.
전주시는 지난해 4월부터 ‘음식물쓰레기 배출량 비례제’를 도입했다. 영등포구에서 시범 실시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RFID 기술에 기반한 음식쓰레기 종량제다. 배출량에 따라 과금도 시작했다.
전주시는 지난해 이 시스템을 갖추는 데 13억원을 썼다. 서버 구축, 용기 무료 배포, 프로그램 개발비 등에 쓰였다. 하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시행 전과 비교해 12.6% 정도 쓰레기량이 줄었다.
반찬문화 건드리는 게 핵심인데…
밥상 차림을 바꾸지 않고도 전주시가 일정 성과를 거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인 ‘반찬 문화’를 건드리지 않고 음식쓰레기를 근본적으로 줄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독신가구가 늘고 대형마트가 증가하면서 음식쓰레기는 증가 추세를 꺾지 않고 있다. 2000년 하루 1만1400t에서 2008년 1만5100t으로 매년 평균 3%씩 늘고 있다.
환경부도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 “식탁문화를 바꾸는 게 근본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저희도 그렇고 음식점 업주들도 주문식단제 도입을 원합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행되지 않으면 하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제도라는 게 문제입니다.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한번 실패했던 정책이라 다시 하려 하지 않아요. 환경부 내부에서 토론하면 ‘결국 주문식단제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아직도 나옵니다. 저희는 아직 그 제도에 미련이 많습니다.”(환경부 관계자)
문제는 한상 가득 나오는 반찬문화를 고쳐나가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반찬 가짓수를 줄였다가 관광객들의 항의를 받은 음식점 주인들이 반찬 가짓수 줄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푸짐한 반찬은 전주 음식문화의 기본이라 바꾸기 힘들다. 개별 반찬의 양을 조금 줄인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는 과거 실패로 몸을 사리고 있다. 하지만 주문식단제라는 극단책이 아니어도 반찬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절충안은 얼마든지 있다. 테이블에 김치, 깍두기 등을 올려두고 손님이 덜어먹게 하면 음식쓰레기가 30% 이상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덜어먹는 반찬용 그릇 구매를 지원하는 등 정책적으로 도와주면 식당 음식쓰레기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쓰레기 중 식당에서 나오는 게 전체의 35%나 된다. 줄일 여지는 가정보다 식당이 더 많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일본 식당엔 밑반찬으로 단무지 세 쪽만 나와요. 밑반찬문화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제2차대전 패전 직후 ‘물자를 아끼자’며 정부가 식당에 기본반찬을 내놓지 못하도록 지도해 바꾼 거예요. 일본의 1인당 음식쓰레기 발생량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겁니다.”(김미화 사무총장)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