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위기 시골학교 ‘희망 합창’… 낙동초등학교 합창단의 ‘칼린샘’ 이지은씨
입력 2010-10-27 18:05
20일 충남 보령시 천북면 낙동초등학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아름다운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끌려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1층 다목적실. 원래 식당으로 사용되는 그곳에 이 학교 아이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키가 작은 1학년생과 여학생이 앞줄을 차지했다. 고개를 바싹 들어 지휘자를 보고 있노라니 목이 아픈 듯했다. 맨 뒷줄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남자 아이들의 차지. “김재열, 커튼 너무 사랑한다. 뒤에 기대지 마!” 지휘자의 말에 재열이는 쭈뼛쭈뼛 커튼에서 등을 뗐다.
아이들은 짬만 나면 친구와 떠들기 바빴다. 하지만 지휘자의 손이 올라가고, 피아노 반주자의 손이 연주를 하자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은 딴 사람으로 변했다.
‘보령의 칼린샘’
아름답게 노래하는 아이들의 맨 앞. 반짝반짝한 시선이 모아지는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목청을 높였다.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아이들이 떠들면 “합죽이가 됩시다!”를 외쳤다. 줄을 제대로 서지 않으면 “자기 자리 자꾸 까먹으면 안돼!”라며 일일이 제 위치를 잡아줬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아이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이지은(33)씨는 지난해 7월부터 이 학교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고 있다. 악보도 보지 못하면서도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예뻐 들기 시작한 지휘봉을 놓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개인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충남 홍성시립합창단의 솔리스트, 홍성어린이합창단 지휘까지 맡고 있다. 출석하는 홍성장로교회에선 어린이성가대 지휘자.
“10분간 휴식!” 이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빠져 나갔다. “보셨죠? 정말 예쁘죠. 애들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바쁘지만 꼭 시간을 내 이곳에 오려고 해요.”
낙동초교에서는 방과후학교 과목 중 하나로 합창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47명. 모두가 낙동초교 합창단의 일원이다. 지난해 7월 구성돼 이제 갓 돌을 지났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이 학교 학생들이 협연을 한 것이 계기가 돼 합창단이 구성됐다.
처음에 이씨는 협연에 동참했던 선배의 부탁으로 아이들의 발성연습만 맡았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아이들의 첫 인상은 어땠을까. “주눅 들어 있고 자신 없이 쭈뼛대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표정도 어두웠고요.”
그럴 만했다. 전교생이 50명이 되지 않아 통폐합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다른 학교로 옮겨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학부모인 김영진 목사(보령 시온교회)는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이 없어질지 몰라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잘 웃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복민숙 교장 역시 “아이들의 불안감이 상당했죠”라고 기억했다.
복 교장과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들이 얻은 답은 ‘합창’이었다. 이씨에게 SOS를 보냈다. 이씨는 평소 아이들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 노래를 통해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 아이들 앞에서 지휘봉을 들었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애들 얼굴은 찡그려져 있지, 악보는 보지 못하지…. 멀뚱멀뚱 제 얼굴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그가 이미 지휘를 맡고 있던 홍성어린이합창단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어려운 오디션을 통과해 합창단에 들어온 그곳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배워왔다. ‘척하면 척’이었다. 이씨는 낙동 아이들에게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렸다.
정말 시작은 미약했다. 악보 보는 법, 가사를 바르게 전달하는 법, 지휘 보는 법, 노래 부를 때의 표정 등 가르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따라오지 못했다. 특히 1, 2학년 학생들이 어려워했다.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도 벅찼다. 이씨는 말 안 듣는 고학년, 못 따라오는 저학년 학생을 함께 이끌어가느라 힘이 들었다. 그는 이 학교 정식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합창대회에 나갈 경우 지휘자로 함께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이 학교 4학년을 맡고 있는 김기태 교사에게 지휘법을 가르치는 것까지 이씨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변화가 나타나리라 믿었다. 그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의 표정에서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날 만난 학생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지난 7월, 이씨는 보령시 주최로 열린 합창대회에 참가했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죠.” 결과는 대박이었다. 대상. 이 일은 아이들과 이씨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우승자가 호명됐을 때 아이들 얼굴에서 처음으로 함박웃음이란 걸 봤어요. 하루하루 합창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즐거움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아요.”
김해나(12·여) 영제(10) 영민(9)이 3남매는 합창단을 하기 전까지 집에서 만날 싸웠다. “색연필 내 거야.” “내가 먼저 먹을 거야.”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그 가정에 노랫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셋이 소프라노, 알토로 나눠 노래 연습하면서 놀아요.” 해나가 까르르 웃었다. 해나 아빠 엄마도 아이들의 변화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씨는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에 힘을 얻고 있었다. 이 학교 학생들의 성적도 크게 향상됐다.
그는 합창단 노래집의 마지막 네 곡을 복음성가로 채웠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힘차게 자라났으면 해요.” 그는 모두가 한 마음이 돼야 아름다운 화음이 나오듯 낙동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남을 먼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되길 기도했다.
보령=글 조국현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