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소망을 품어 보세요… 준영이 엄마
입력 2010-10-27 17:36
평안한 가을을 보내고 계신지요.
햇살이 약국 앞 작은 거리를 가득 채울 때면 무언가를 널고 싶어집니다. 연전 가을에 수확한 빨간 고추를 돗자리를 깔고 좍 펴서 말리면서 철에 맞추어 귀하게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천지 운용의 오묘하신 진리를 생각해 보곤 하였답니다.
물렁물렁했던 고추가 물기 한 점 없이 바짝 말라서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질 좋은 태양초가 되는 순간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동네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고 갈무리를 잘하여 오랫동안 두고 먹었답니다.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서 고춧가루로 인해 행복하였지요.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제 고춧가루를 물색없이 자랑하곤 했습니다.
환하기만 한 가을 햇살의 시간들도 가난한 준영이 엄마(10월 14일자)에게는 따스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이 바쁘고 고된 시름의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거리의 풀빵을 나누어 먹으며 사이좋게 지내는 준영이와 재형이에게도 이 가을은 수난의 계절이 되어 아프게 아이들을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열흘 전에 준영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준영이가 학교수업이 끝난 뒤에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친구에게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하철역까지는 수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으나 가는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준영이의 발목부위가 꺾였고 관절부위가 골절 되어버렸습니다. 열흘 전 일이었습니다. 그 열흘을 준영이 엄마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한쪽다리 전체를 석고 처리하여 움직임이 불편한 준영이를 돌보는 일과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해야 하는 그녀의 일상.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대충 할 수 없기에 그녀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얹혀진 삶이라는 무거운 바윗돌을 단 하루라도 아니 잠시라도 그녀의 일상에서 내려놓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리를 가자는 친구에게 십리를 가주고 친구가 겉옷을 벗어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위로하며 안아 주고 싶었습니다.
준영이 엄마와 함께 작은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으로 ‘화훼영모대전’을 보러 갔습니다. 수 백 년을 거슬러 올라 만난 세상 만물은 지금의 그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걸 보면 뭘 아냐”고 주저하던 그녀는 미술관 안마당에서 만난 각종 석물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서 말합니다.
“저것들도 참 힘들었겠네요. 이렇게 벌판에서 강한 햇살과 비바람을 다 맞고 있으니까요. 얼마나 팍팍하고 고됐을까, 누구하나 손 잡아주는 이 없고. 춥다고 이불하나 덮어주는 이 없는 절해고도에서 바람맞고 서있는 그런 심정이었을 거야.”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눈물 한 방울을 떨어Em렸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넓지 않은 건물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호랑이 나비 원숭이 등 다양한 생물이 화폭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실감나고 선명하였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좀 작은 사물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장 안쪽으로 좀 낮아 보기 편하게 진열되어 있는 그림을 보던 그녀는 발길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예쁜 꽃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 두 점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림을 그린 분은 ‘신씨’(1504∼1551) 라고 기재되어 있었지요.
붉은 양귀비꽃과 흰색과 하늘색 섞인 고운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 원추리꽃과 패랭이꽃이 화폭을 가득 메운 그림이었습니다. 500년 전에 그린 그림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비의 날갯짓은 살랑거리고 톱날을 닮은 패랭이꽃잎은 하늘거리고 있었습니다. 양귀비꽃잎의 붉은 색은 손가락을 툭 대면 묻어 날 것만 같이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멋진 그림을 그린 이가 여인일거라고 생각된 그녀는 “이렇게 재주가 귀한 여인이 마흔일곱 해만 살고 말았네요. 이 여인에게도 아마도 자식이 있었을 거예요.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군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진열장 유리 위로 그림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렇지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품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지요. 제가 지금 겪는 이 환난이 결국은 소망을 품게 하는 것이네요. 제가 어렵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준영이 엄마가 먼저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환난을 넘어 소망을 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