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G20 홍보, 過猶不及
입력 2010-10-27 18:02
‘세계, 한국에 길을 묻다.’
10개월 전 본보 1월 1일자 3면 기사의 제목이었다. 옆 기사의 제목은 ‘구경꾼서 참여자로’였다.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해를 맞아 본보가 기획한 시리즈 첫 회 기사였다.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귀동냥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의제를 제시하고 합의를 중재하는 위치에 올라설 기회를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서울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던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들은 기자에게 “국제회의에 가면 한국의 의견을 묻는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라고 놀라워했다.
그러한 놀람은 지난 22∼23일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현실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조정, 환율 해법 등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 논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냈고,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합의된 내용 중 30∼40%는 우리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기초로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는 이전까지 미국 관리나 일본 관리가 알려주는 내용으로 회의 과정을 유추할 뿐이었다.
경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환율 문제는 풀기 어려웠다. 회의 중간 중간에 이를 조율하기 위한 비공식 모임이 자주 열렸다. 미국과 중국 간, 미국·중국·유럽 간 회의도 여러 차례 열렸다. 우리나라는 그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장 문밖에는 참여하지 못한 나라의 공무원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들이 저를 붙잡고 ‘회의는 어떻게 됐느냐. 조율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모습은 불과 몇 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회의장 문밖에서 서성이며 열강들에 귀동냥하던 한국이 회의장 안에서 미국 중국 영국과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했다. 회의장 밖에 있었는가와 회의장 안에 있었는가는 완전히 다르다. 세계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과 세계의 흐름에 끌려가는 것의 차이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보름 정도 남았다.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주요 20개국 정상들이 모여 밥 한번 먹고 끝난 회의가 아니라는 평가는 받을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국민들 역시 G20 정상회의 개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달 초 청와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G20 정상회의 개최가 국가 위상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88.1%였다.
다만 이러한 자부심과 별개로 ‘G20 호들갑’은 자제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청와대 트위터에 “G20 정상회의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비해 얼마나 중요한 회의이기에 온 나라를 뒤집어 놓느냐”는 의견이 올라왔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많은 국제회의와 세계적인 행사를 치렀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이 있었고, 2000년 ASEM 정상회의와 2005년 APEC 정상회의도 훌륭히 치러냈다.
G20 정상회의는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 열렸다. 서울회의는 다섯 번째이고 내년에는 프랑스에서 6차 회의가 열린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서울회의가 끝나도 세계 각국은 더 치열한 경제전쟁, 환율전쟁을 벌일 것이다. 이후의 경쟁 과정에서 ‘세계 경제 프리미어 포럼(Premier Forum)’인 서울 G20 정상회의를 주도했던 경험은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를 더 많이 알리지 못한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다. ‘단군 이래 최대 행사’ ‘수십조원의 경제효과’ ‘16만개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표현들은 과하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위치는 여기쯤이다.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고, 정부도 더 열심히 뛰겠다’고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남도영정치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