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탁구 대표 김병영씨, 휠체어 앉아 설움 날리는 강스매싱 “탁구대는 또 다른 세상”

입력 2010-10-27 18:43


지름 40㎜, 무게 2.7g의 탁구공이 오가는 테이블이 장애인 국가대표 탁구 선수 김병영(41)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다. 두 다리는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지만 두 팔은 공을 자유롭게 테이블 이곳저곳으로 날려 보낼 수 있다. 장기인 스매싱 실력이 이전에 비해 약해졌지만 여전히 마음먹은 대로 공을 꽂아 넣을 때는 더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27일 2010 광주세계장애인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에서 만난 김병영은 한국 장애인 탁구계의 간판스타다.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대회 남자 단식 금메달 및 단체전 은메달을 비롯해 지난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안게임 및 기타 국제대회에서도 남다른 스피드와 스매싱 실력을 자랑하며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탁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장애를 입고난 후인 1993년 대구 장애인복지관에서였다. 1989년 군 복무 중 교통사고로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입은 김병영은 1993년 보석 가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향인 울산을 떠나 무작정 대구로 향했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은 복지관에서 그는 탁구와 조우했다. 배우려던 보석 가공 기술은 뒤로 밀렸다.

복지관에서의 기숙 생활이 끝난 후에는 울산부터 대구까지 꼬박 4시간이 넘는 거리를 CT100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한 채 달려왔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휠체어와 목발을 넣을 수 있도록 통을 붙인 채 울산과 대구를 오가는 생활을 2년 넘게 반복했다.

“당시에는 연습할 수 있는 곳이 대구밖에 없었어요. 4시간을 꼬박 달리다 보니 여름에는 오토바이에 열이 심해서 중간 중간 쉬어야 했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옷 속에 신문지를 넣고 달려야 했었죠”

여관에서 자고 새벽 일찍 연습장을 찾아 밤늦게까지 라켓을 놓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이런 그에게 그의 어머니는 “탁구에 미쳤다”고 했다. 제대로 지도해줄 코치도 없는 상태에서 거의 독학으로 탁구를 배웠지만 처음 참가한 1993년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흔을 넘긴 김병영은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대회를 선수생활의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 그에 앞서 광주에서 열리는 이번 세계 대회와 올해 열리는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대회에서의 우승이 우선 목표다. 이달 말에는 국제탁구연맹(ITTF) 선수위원에 한국 대표로 출마해 새로운 영역에도 도전한다. 어느덧 장애인 탁구계 고참이 된 그는 후진양성에 대한 고언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적을 냈지만 선전했던 선수들이 나이를 많이 먹었어요. 우리 이후 세대에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나와서 뒤를 받쳐줘야 하는데 운동을 하려는 장애인들이 점차 줄어 걱정입니다”

광주=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