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장기휴가다] 꿈 같은 ‘한달 휴가’ 못할 것도 없다

입력 2010-10-27 18:03


상:‘열심히 일한 당신’이 못떠나는 이유

올 초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여름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휴가가 평균 23일인데 실제 사용일수는 6일에 불과하다는 보고를 받고 휴가를 독려했지만 정작 대통령은 취임 이후 나흘밖에 휴가를 못갔다. 의무휴가안을 만든 행정안전부 과장은 아예 휴가를 하루도 못갔다”고 꼬집었다.

2008년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인 2134시간으로 집계됐다. 독일보다 780시간, 일본보다 300시간 많지만 생산성은 옛 동구권을 빼면 꼴찌 수준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을 ‘워커홀릭 세계챔피언’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무원들에게 휴가를 떠나라고 독려하고 TV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가 전파를 타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기업은 휴가를 독려하기 위해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미사용분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내년부터는 초·중·고교 수업도 주5일제로 바뀐다.

사회 분위기가 휴가를 권장하는데도 직장인들이 정작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관광공사의 ‘2008년 국민여행실태조사’에 의하면 여가시간 부족이 65.2%를 차지한다. 한국의 공휴일은 2009년 기준 14일로 일본(15일), 프랑스(11일), 미국(10∼14일) 등 선진국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대체공휴일과 연차휴가를 고려한 실제 유급휴가는 한국이 25일로 독일(38일), 러시아(36일), 일본(35일) 등에 비해 10일 이상 적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내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체휴일제를 도입하고 어린이날, 근로자의날, 현충일에 한해 요일제를 도입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에도 이와 관련한 7개의 의원입법안이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나 공휴일 확대와 대체휴일제 도입을 둘러싸고 여야와 노사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인들의 휴가사용이 부진한 데는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하기 어려운 직장의 경직된 분위기도 한몫한다.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고 휴가를 전후해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휴가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부하직원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면 상사를 문책하기도 하지만 외국처럼 7일 이상 장기휴가는 언감생심이다.

D증권의 K차장(40)은 한해 휴가일수가 20일이 넘지만 10일 이상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그것도 2∼3일씩 쪼개 몇 차례에 걸쳐 다녀왔다. K차장은 큰 맘 먹고 올 여름 일주일 휴가를 냈지만 결국 3일 만에 회사로 복귀했다. 휴가 중에도 업무와 관련해 계속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K차장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업무를 대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장기휴가라도 떠나면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조직의 업무분장이 홀가분하게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 해 전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달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는 뉴질랜드 관광청 홍보담당자의 자랑에 “당신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 일은 누가 하냐”고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자신의 업무를 조직 구성원이 나눠 하도록 매뉴얼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휴가시 업무분장이 매뉴얼화 되어있는 조직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볼 일도, 휴가를 전후해 밤을 새워 업무를 처리할 부담도 없다.

무작정 휴가를 가라고 종용할 게 아니라 부담 없이 휴가를 떠나도록 업무 분장을 매뉴얼화하고 대체인력을 확보하는 등 장기휴가 문화 활성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