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러시아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둔 수산나

입력 2010-10-27 17:40


요즘 우리 집에 반가운 손님 한 명이 1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옵니다. 대안학교 학생 수산나(가명)인데 우리 학제에 적용하자면 중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수산나는 러시아 태생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두었고 이스라엘과 유럽 등지에서 자라다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전형적인 서구 청소년으로 조막만한 얼굴에 늘씬합니다. 재즈댄스를 배우고, 중1인 우리 딸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큽니다.

수산나와는 애완견을 일시적으로 돌보는 ‘펫 시터’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산나와 그 부모가 어느 날 우리 집 앞에서 ‘펫 시터 하실 분’ 광고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들이 기르는 ‘니모’라는 강아지와 함께 우리 가족 눈에 띄어 기르겠다고 한 것이지요. 우리 푸들견과 친구가 됐으면 싶었습니다. 월 10만원 받습니다.

수산나는 등하교에 맞춰 니모를 가져오고 가져가며 지극정성으로 돌봅니다. 그러다 보니 수산나와는 한 가족처럼 지냅니다.

이 아이는 한국말도 잘하고 예절도 참 바릅니다. 엄마의 한국말 통역이기도 하고요. 가족과 함께 그 아이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 한편으로 애잔한 생각이 듭니다. 일반학교 때 서구적 외모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 대안학교 학생으로서 부담 등을 통해 그 아이가 갖는 정체성 혼란이 느껴집니다. “이젠 괜찮아요” 하는데 딸 키우는 부모라 안쓰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수산나의 수다를 우리는 즐겨 듣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긴장하고 말해야 하는 아이. 한데 우리 집에선 그 긴장을 안 해도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자에 선보인 ‘중도입국자녀’ 기사 내용이 먼 데 얘기인줄 알았는데 제 곁에 있었네요. 수산나 파이팅.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