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영 새날학교 교장 “상처받은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는 것 보면 뿌듯하죠”

입력 2010-10-27 17:46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 대표이사, 광주 새터민센터 소장,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소장, 외국인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국의료컨설팅’ 부대표, 인권위 교육 강사, 전남경찰청 외사관련 강사 등.

새날학교 이천영(52) 교장의 직함들이다. 그는 광주에서 외국인노동자와 이주여성의 대부로 통한다. 지난 10여년간 이들을 위해 삶을 바쳤다.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목사가 됐다. 그 공로로 주한 태국 대사관 감사장을 비롯해 법무부장관상, 경찰청장상 등을 받았다.

그는 한 여고의 평범한 영어교사였다. 1998년 가족과 봄나들이를 갔다 오는 길에 한 외국인노동자를 알게 됐다. 구멍가게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며칠 후 그 외국인에게 전화가 왔다. 도와 달라고 했다. 사장에게 맞아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는 이 외국인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봤다.

“제가 그랬어요.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을 전전했고, 밀린 월급 요구하다 몰매를 맞곤 했지요. 너무 처참해서 아내에게도 숨기며 살았어요.”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공동묘지 산지기였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이 교장은 껌을 팔며 겨울을 나기도 했다. 잘 곳이 없어 이집 저집을 기웃거렸다.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하다 이대로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중·고등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전북 익산 원광대학에 합격했다. 26세에 교사가 됐다.

“그때 만난 외국인노동자는 저나 다름없었어요. 이때부터 외국인노동자 일이라면 내 일처럼 나섰어요. 병원, 장례식장, 악덕 기업주 사장실을 누비고 다녔죠. 찾아오는 외국인노동자도 많아졌어요.”

이 교장은 교직자선교회원, 동료 교사들의 도움으로 광주 하남공단의 창고에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만들었다. 이어 외국인근로자 무료 진료소, 인권상담소, 쉼터, 무료 급식소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2007년엔 새날학교를 열었다.

그는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려 퇴직금을 당겨쓰다 아예 명예퇴직을 했다. 받은 퇴직금은 빚 갚는 데 다 썼다. 그러고 보면 이 교장은 교사에서 승진한 셈이다. 하지만 나아진 것은 없다. 월급은 거의 없고, 학교 사환 일까지 해야 한다. 가정에선 무책임한 남편, 아버지가 돼버렸다.

하지만 보람은 더 커졌다. “부모 이혼, 한국생활 부적응 등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이 때문에 고생스러워도 이 삶을 그만둘 수 없는 거고요.”

광주=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