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 이혼 허락해 주세요” 여중생, 법원에 눈물의 편지 호소

입력 2010-10-27 21:32

“엄마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요. 엄마와 아빠 이혼을 허락해 주세요.”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간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뒤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린 소녀가 법원에 부모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했다.

27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중학생인 A양(15)은 최근 부모의 이혼소송이 계류 중인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이주영 판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법원에서 엄마, 아빠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A양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어머니가 법적으로 아버지와 결별해 ‘한부모 가정’이 되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넉넉하진 않지만 평범하게 살아오던 A양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2년 전부터다. 도박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빚을 갚겠다며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어머니는 A양 등 4남매와 할머니까지 모두 6명의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A양 어머니는 시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편의점에서 매일 11시간씩 야간근무를 했다. 일주일에 6일간 밤새워 일하고 받는 월급은 150만원. 하지만 이 돈으로 6명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빠듯했다.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A양의 고교 진학까지 앞둔 상황에서 A양 어머니는 결국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어린 네 자녀와 시어머니가 매일 겪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연락이 끊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늘 크게 느껴졌던 A양도 어머니의 답답한 마음을 헤아렸는지 이런 사정을 편지에 담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A양은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하게 되면 정부에서 학비를 지원해 준다고 들었다”며 “엄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A양 어머니가 주장하는 내용을 검토해 다음 달 이혼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이런 사연을 접한 가정법원 산하 서울소년보호지원재단은 재판 결과와 별개로 A양을 포함해 부모가 이혼소송을 하거나 본인의 비행으로 재판을 받은 보호소년 42명에게 30만∼5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격려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민감한 시기에 자칫 상처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잘 극복하고 희망을 키우도록 독려하는 차원”이라며 “이혼소송은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를 거쳐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