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흉년에… 야생동물 “춥고 배고파 겨울잠 안와요”
입력 2010-10-27 18:23
올 겨울은 야생동물의 겨울나기가 유난히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줄어든 도토리 결실량은 배고픈 겨울을 예고하고, 갑작스런 가을 한파는 양서·파충류의 동면을 앞당겼다. 도토리를 주워가거나 등산로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의 활동도 야생동물의 월동을 더욱 힘들게 한다.
◇도토리 흉년=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정우진 홍보팀장은 27일 “지리산 지역을 표본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 비해 도토리 결실량이 30∼40%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조경진 박사는 “전국적으로 올해 도토리 결실량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도토리는 갈참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류의 열매를 통칭한다. 땅에 떨어지거나 눈 속에 파묻혀도 과일류처럼 잘 썩지 않기 때문에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도 반달가슴곰, 멧돼지, 산양, 다람쥐 등 크고 작은 야생동물의 먹이가 된다.
수종에 따라 2∼3년을 주기로 해거리를 해 풍년과 흉년의 격차가 큰데다가 올해 이상 기온이 겹쳐 결실량이 더욱 줄어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달가슴곰 비상=현재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 17마리가 살고 있다. 이들은 도토리 결실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해발 1000m 안팎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다. 반달가슴곰은 12월 말∼1월 초에 시작하는 동면을 위해 요즘 왕성히 먹이를 섭취하며 체중을 불린다. 여름철에 교미를 마친 반달가슴곰은 동면 기간 동안 새끼를 낳는데 동면 전의 영양 상태가 출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배불리 먹어야 할 시기에 가장 흔한 먹잇감이 줄어들어 내년 봄 태어날 반달가슴곰의 마릿수가 줄고 건강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묵을 쑤기 위해 또는 재미로 등산객이 주워가는 분량도 만만치 않아 반달가슴곰의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느긋한 산양, 잠든 파충류=월악산 설악산의 혹독한 산악지대에서 사는 산양은 갑작스럽게 닥친 가을 한파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장 이배근 박사는 “이 정도 추위가 찾아왔다고 영향을 받는다면 영하 20도에 이르는 겨울 추위에 살아남을 수 없다”며 느긋한 표정이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산양은 겨울털로 털갈이를 끝내고 이미 월동 준비를 마쳤다. 겨울 걱정보다는 10∼12월 짝짓기 철을 맞아 구애 작전에 몰두하고 있다.
산양은 기온 하강보다는 겨울에 눈이 얼마만큼 오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눈이 많이 쌓이면 먹이활동과 이동에 제약을 받아 겨울을 버티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치악산 국립공원의 표범장지뱀과 남생이는 이미 겨울잠에 빠졌다. 10월 말∼11월 초가 동면에 들어가는 시기인데 최근 급격한 기온 저하로 대부분 개체가 동면을 시작했다. 표범장지뱀은 굴을 파고 들어가 동면을 하고 남생이는 저수지 바닥의 뻘 속에서 잠을 잔다. 남생이는 신체대사를 극도로 떨어뜨려 봄이 올 때까지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