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FTA 협상문건 유출, 가볍게 볼 일 아니다
입력 2010-10-27 21:19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동차 부문 추가 협상과 관련된 우리 측 문건이 최근 미국에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차 연비와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등 자동차 핵심 쟁점에 대한 우리 정부의 협상전략을 담고 있는 문건이 지난 9월 미 정부로 넘어가 국가정보원이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문건은 환경부가 작성한 것으로 지식경제부를 거쳐 자동차업계로 들어갔고, 다시 국내외 자동차업계 경로를 통해 미 정부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자동차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어서 내사 종결 처리했다는 설명이다.
FTA 같은 중대한 협상 와중에 우리의 문건이 상대방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중대한 기밀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국정원이 보안조사까지 했을 정도면 가볍게 볼 일도 아닌 듯하다. 자동차업계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적어도 몇 개의 안이 담겨 있을 텐데, 상대방에겐 매우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에 조사를 지시한 것도 미국이 자동차 환경 규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방침을 너무 소상히 알고 있는 게 이상하다는 보고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협상전략이 유출되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우리의 패를 알고 있는 셈이니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심하고 답답하다. 유출 문건에 담긴 기밀 내용의 경중을 떠나 유출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차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FTA 추가 협상을 다음달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에 끝낸다는 목표 아래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타결 후 미 의회의 반대로 3년 넘게 표류해왔음을 감안하면 이처럼 시한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너무 쫓겨 성급하게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사에 일대 전환기가 될 정도로 큰 의미를 갖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