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M 규제법 처리 무산 후폭풍] 정부, 무슨 문제점 있기에 부정적인가… 외국 유통업체도 ‘상생법’ 적용돼 통상 마찰 소지
입력 2010-10-26 22:32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처리에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이 발목을 잡았다. 상생법 개정안은 직영 기업형 슈퍼마켓(SSM)뿐만 아니라 대기업 지분이 51% 이상인 가맹점 형태의 SSM도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재래시장 반경 500m 안에 SSM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법보다 광범위한 규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SSM 난립을 규제하려면 상생법 통과는 필수다.
하지만 정부는 상생법 개정안 통과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통상 마찰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까닭에서다.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계 유통업체가 가맹점 형태로 SSM 사업에 나섰을 경우 규제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1996년 유통 서비스를 100% 개방한다는 내용의 서비스 양허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했는데 상생법 개정안은 이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FTA 비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외교통상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상생법과 관련해 EU로부터 여러 차례 항의를 받았다며 통상 마찰을 우려하는 발언을 해 왔다. 이는 한국의 SSM 진출을 염두에 둔 EU 업체의 이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25일 유통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상생법 개정안 처리가 미뤄지면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끝내 유야무야될 수 있음을 우려한 야당이 유통법 우선 처리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가맹점 형태의 SSM도 사업조정 신청대상이 돼 개점 자체가 까다로워진다. 대기업 지분이 51% 이상인 SSM 가맹점은 주변 소상공인이 사업조정을 신청했을 때 개점 및 영업을 미루고 소상공인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 협의를 하거나 강제조정을 통해 SSM의 영업 방법이나 시간 등에 제한이 가해진다. 외국계 기업이라고 상생법 규제를 피할 수는 없다.
논란을 의식한 듯 김 본부장은 26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주한 EU 상공회의소 주최 세미나의 오찬연설 후 “여야 합의가 있는 만큼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무역 분쟁의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분쟁의 소지가 없는 게 가장 좋지만 이미 그런 단계는 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본부장이 상생법 처리에 반대를 분명히 했던 것보다 한걸음 물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어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 경쟁이 격화되면서 어려워진 중소 유통소매업자를 위한 여야 합의 내용을 존중하되, 분명히 거기에는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 본부장은 오찬연설에서 FTA가 예정대로 내년 7월 1일 발효되려면 EU 측 의회 동의가 필수적인데 그 절차가 섬세하고 복잡해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