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의 날’ 표창 받은 노숙인 3인 “한푼 두푼… 통장에 희망이 쌓였어요”

입력 2010-10-26 21:45


부랑자나 다름없던 김모(41)씨가 전문기술을 갖춘 어엿한 직장인으로 거듭난 것은 저축하는 습관 덕분이었다.

청약저축과 정기적금, 개인연금보험, 희망플러스통장 등 김씨가 매달 일정액씩 불입하고 있는 통장만 4개다. 통장잔고를 합치면 1000만원이 넘는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방 두 칸짜리 임대주택도 마련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2002년부터 노숙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막노동을 하고 받은 하루 일당을 술값으로 탕진하기 일쑤였다. 수중에 돈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일을 나가는 등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급급했다. 희망도, 삶의 목표도 없었다.

김씨의 변화는 2008년 3월 서울 망우동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에 입소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적은 돈이나마 매일 저축하도록 한 센터 내규에 따라 김씨는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저축액이 늘어나면서 김씨가 술을 마시는 횟수는 줄었고, 건강도 좋아졌다.

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와 함께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다. 새벽 동트기 전에 나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1년여 만에 보일러취급, 방화관리사, 전기기능사 등 3개의 자격증을 따냈다. 현재 김씨가 서울시내 한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시설관리 일을 맡게 된 것도 이때 자격증을 딴 덕분이다. 김씨는 앞으로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김씨처럼 자립을 위해 꾸준히 저축해 온 신모(49)씨와 오모(53)씨 등 노숙인 3명이 26일 ‘저축의 날’을 맞아 금융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신씨는 군 복무 중 사고로 의가사제대를 한 후 정신질환을 앓아 수년간 정신병원과 노숙생활을 반복하다 자활에 성공한 케이스다. 신씨가 지난 3년간 저축한 돈은 모두 1750만원. 공공근로사업으로 월 50만원 안팎의 돈을 받는 신씨에게는 거액이다.

노숙생활을 접고 서울에코센터(재활용센터)에서 근무 중인 오씨는 130만원의 월급 중 90만원을 꼬박꼬박 저축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 3명은 지난해 서울시 노숙인 저축왕 선발대회에서도 상을 받았다. 노숙인 저축왕 선발대회는 노숙인들의 저축을 장려하고,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서울시는 이날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제47회 저축의날 시상식에서 이들을 대신해 수상했다.

시상식에는 강원도 홍천군 홍천뚝배기 식당을 운영하는 유정자(60·여)씨가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는 등 91명의 수상자가 참석했다. 연예인 중에는 영화배우 이다해(본명 변다혜)씨가 대통령 표창을, 가수 양희은씨와 영화배우 수애씨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