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환율전쟁의 유럽식 해법
입력 2010-10-26 17:54
2차 세계대전은 환율전쟁이 진짜 전쟁이 된 역사적 사례다. 1930년대 대공황을 맞아 유럽 국가들은 수출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자국 화폐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했다. 스웨덴은 40% 평가절하해 경제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했다. 하지만 환율 조작을 통한 수출 증대는 경제위기를 타국에 떠넘기는 불공정 행위로 간주됐고 보호주의적 대응을 유발했다. 그 결과 2차대전 발발 이전 10년 동안 관세 장벽은 높아졌고 세계 교역은 감소했다. 서로 관세를 높이는 무역전쟁은 결국 총과 대포로 시장을 여는 영토전쟁으로 발전했다. 환율전쟁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모든 화폐가 다함께 평가절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2차대전 종전을 앞둔 1944년에 44개 국가가 브레튼우즈에 모여 고정환율제에 합의했다. 달러는 금본위제를 채택해 안정적이고 믿을 만한 기축통화가 됐고, 다른 국가의 환율은 달러에 고정시켰다. 환율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이 조정하도록 했다. 1970년대에 이 체제가 붕괴한 것은 미국이 달러를 무한 발행하기 위해 금본위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미국은 100달러를 가져오면 35온스의 금을 준다는 금 태환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2차대전 교훈이 낳은 유로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고, 환율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국가는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원칙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자본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환율은 경제의 기본 여건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금융위기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다.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7년의 세계 금융위기 발발 원인은 자유화된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투기적 국제 자본 때문이다.
유럽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에 대하여 화폐 통합으로 대응했다. 유럽의 화폐 통합이란 관리된 변동환율제를 실행하고 종국에는 단일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은 1979년부터 유로화가 출범한 1999년까지 20여년간 환율의 변동 폭을 2.25%로 제한하는 제도를 실행했다. 만일 화폐 통합이 없었더라면 유럽 국가들은 지금 서로 환율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환율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이득을 보고 있다. 달러가 위안화에 비하면 불리하지만 유럽이나 신흥공업국의 화폐에 비하면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럽은 미국과 중국의 환율정책을 비판한다. 하지만 비판에 열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최대 교역시장이 단일 화폐를 근간으로 환율 안정성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G20 의장국인 프랑스는 신 브레튼우즈 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달러 본위였던 브레튼우즈 체제를 다극 기축통화 체제로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이 제안이 실행되면 세계 금융질서는 달러의 천하통일시대에서 국제통화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달러, 유로, 위안화의 삼국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동북아 통화 협력 고민해야
환율전쟁시대에 우리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일시 봉합된 환율전쟁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피해국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변동환율제를 보완해 국제 금융의 불안정성을 개선하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북아 통화 협력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스는 금융위기를 맞아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도움을 동시에 받았다. 우리는 지역 통화 협력이 취약해 필요 이상의 외환을 쌓아 두어야 하는 비효율성을 감수하고 있다. 그나마 한·중·일 통화 스와프 제도, 치앙마이 협정 등으로 금융위기 안전망은 구축되고 있다. 하지만 한·중·일 간의 환율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따라서 매년 개최되는 3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동북아 통화 협력을 제안한다.
고상두 연세대 유럽지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