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림으로 한 평생 예술 선비 강세황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입력 2010-10-25 18:03
“내가 평소에 술을 좋아하지 않고 주량도 매우 적어 겨우 한 잔만 마셔도 바로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린다. 술을 보면 마시지만, 없어도 술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제사라는 것은 그가 생전 좋아하던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 나 같은 사람은 술을 좋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죽으면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올릴 때 술을 절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들 관에게 보낸 편지)
표암 강세황(1713∼1791)의 문집 ‘표암유고’(지식산업사)가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변영섭 교수·동국대 한문학과 김종진 교수·영남대 한문교육과 정은진 교수·조선대 미술학부 조송식 교수에 의해 처음 완역됐다. 말년을 제외하면 사대부로선 썩 화려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여항의 예술가들을 후원한 문인이자 그 자신 시·서·화에 능한 예술가로 이름을 얻은 이의 글이다. 찾아온 객과 함께 지은 시, 풍경을 읊은 시, 아들의 시에 차운해 지은 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와 편지글, 비문 등 삶의 굽이굽이에서 지은 시들이 실려 있다.
표암의 조부는 영의정에 증직된 강백년(姜栢年·1603∼1681), 부친은 예조판서를 지낸 강현(姜鉉·1650∼1733)이다. 명문가 출신으로서 출사에 대한 야심이 없을 리 없었겠으나, 영조가 즉위한 뒤 사실상 노론의 일당 독재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소북 계열이던 집안이 몰락했다. 환갑이 다 되도록 관직에 나가지 않은 채 글 짓고 그림 그리는 삶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늙어서야 벼슬길에 올라 도총관에 이르렀다.
그의 제자이기도 한 김홍도를 평한 글도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사백 년 동안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풍속을 그리는 데에 뛰어나, 사람이 하루하루 생활하는 모든 것과 길거리·나루터·가게·점포·시험장·극장 같은 것도 한번 붓을 대면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부르짖지 않는 사람이 없다. 진실로 명석한 머리와 신비한 깨달음으로 홀로 천고의 오묘한 터득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러한 것을 할 수 있으랴!”(370쪽)
읽다 보면 원문이라는 벽 속에 갇혀 있던 200여 년 전 근엄한 문인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산수도’, ‘피금정도’ 등 미술사 책 속에서 보던 그림들도 달리 보일 것이다. “향을 피우면 오래도록 남아 있고 차를 끓이면 쉽게 끓는다.”(549쪽) ‘풍로’를 보고 읊은 통찰력도 놀랍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