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나라여대 김문자 교수 “이 효수 사진 전봉준 아닌 다른 사람”
입력 2010-10-25 18:04
이 날 학술회의에서 일본 나라여대 김문자(金文子) 교수는 “지금까지 전봉준, 김개남의 수급(首級)으로 알려져 있던 동학 수령의 효수 사진에 나온 것은 최재호와 안교선의 수급”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동학지도자인 최재호와 안교선은 1895년 1월19일에 처형당해 3일간 서울 조의문 밖 광장에 수급이 효수됐다. 일본 사진작가 무라카미가 23일 이들을 찍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3일 간의 효수 기간이 끝나 수급이 내려진 이들의 시신은 멍석에 말아져 있었다는 것. 무라카미는 시신을 꺼내 효수된 모습을 다시 찍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당시 ‘오사카매일신문’과 조선에 체류하고 있던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증언 등을 조사해 밝혀냈다고 말했다. 그 해 5월1일자 오사카매일신문은 “인가가 조밀하고 통행이 빈번한 시가 중앙에 망보는 사람도 없이 그리고 방시(榜示)도 없이 이른바 방치된 채로 예(例)의 세 개의 작은 나뭇가지를 삼각으로 교차하여 묶었으며… (중략) 안교선은 범용한 얼굴을 보였지만 최재호는 융준하여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 잠자는 듯한 모양 외에 원한을 구천에 호소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당시 비숍 여사 역시 최재호와 안교선이 효수당한 장면을 보고 “마치 야영장에서 쓰는 주전자대처럼 나뭇가지 세 개로 얼기설기 묶어놓은 구조물에 두 사람의 수급이 아래로 늘어뜨려져 매달려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적었다.
김 교수는 또 전봉준이 관군에게 붙잡혀 압송되는 사진이 찍힌 경위도 알아냈다. 김 교수는 “무라카미가 2월27일 서울의 일본영사관에서 법무아문(法務衙門)으로 이송되기 직전 촬영한 것”이라며 “당시 무라카미는 우치다(內田) 일본영사의 사전허가를 얻어 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동학지도자의 수급 효수 사진과 전봉준 압송 장면 사진은 동학의 주역들을 촬영한 희귀 자료로, 교과서에도 실려져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것이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