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시인 유족 ‘남몰래 장학사업’… 문학적 자질있는 학생들에 10년째 장학금

입력 2010-10-25 19:32


1930년대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김영랑 시인과 쌍벽을 이룬 전남 강진 출신 김현구(1904∼50) 시인의 유족이 10년간 남몰래 장학사업으로 선행을 베푼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김 시인의 차남 문배(72·경기도 부천시)씨와 형제들은 2000년 1300만원의 기금을 모아 ‘현구 시인 장학회’를 만든 뒤 문학적 재질이 있는 강진 성요셉여고 학생들에게 매년 40만원씩 올해로 10년째 장학금을 전달해 오고 있다. 김씨는 또 지난 22일 강진군을 방문해 김 시인의 유물 2점과 장학금 100만원을 황주홍 군수에게 기탁하는 등 남다른 고향사랑을 실천했다.

김씨는 2008년 강진군에서 시문학파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집 한 권 분량의 김 시인 육필 원고와 서간문, 각종 사진 자료 등 문학사적 가치가 큰 유품 28점을 강진군에 기증하기도 했다.

김씨는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강진은 제가 나고 자란 탯자리이자 나아가 시를 쓰셨던 아버지(김 시인)의 시심 발원지였다”며 “비록 많은 액수의 장학금은 아니지만, 문학적 재질이 있는 고향 후배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심어주고 싶어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1903년 강진읍 서성리에서 태어나 1921년 영랑 시인과 함께 ‘청구’ 동인을 결성해 활동했으며, 1930년 5월 시문학 제2호에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등 주옥같은 작품 4편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시단에 나왔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시집 한 권 발간하지 못해 1930년대 ‘시문학파’ 동인으로 두각을 보였던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시인과 달리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후 20년 만인 1970년 현구기념사업회에 의해 유고집 ‘현구 시집’이 간행되면서 학계의 조명작업이 이뤄져 193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강진=이상일 기자 silee06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