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숲으로 돌아간 산림청장

입력 2010-10-25 17:40

스위스 마메른 지역 주민 우엘리 자우터씨는 1993년 어느 날 죽음을 앞둔 영국인 친구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당신의 마을에서 영원히 함께 지내고 싶소.” 자우터씨는 친구의 유언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시신을 화장한 골분을 나무 밑에 뿌리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골분이 거름이 되어 친구와 나무가 함께 지낼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자우터씨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이것이 세계 최초의 수목장(樹木葬)이 됐다. 자우터씨는 주민들의 호응으로 그 지역에 수목장림을 조성했으며, 6년 뒤에는 운영 특허까지 받아냈다.

산지가 많은 스위스에는 이후 수목장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수목장림은 대부분 소규모로, 마을 주변에 위치해 있다. 울창한 숲이 수목장림이 되기도 하지만 어린 나무가 자라는 뒷동산이나 잘 가꾸어진 마을 안 정원도 수목장 묘지로 활용된다. 수목장은 스위스와 인접한 독일과 인구밀도가 높은 일본에 알려져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목장이 첫선을 보인 것은 2004년 9월. 고려대에서 임학과를 창설하고 농대 학장을 지낸 김장수 명예교수는 제자 교수들에게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내가 죽으면 임학자로서 의미 있는 장례를 치러 달라”고 유언했다. 사후에 제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수목장. 경기도 양평 고려대 농업연습림의 50년생 참나무 밑에 유골을 묻었다. 참나무에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조그마한 표지만 걸렸다.

지난 22일 별세한 이보식 전 산림청장(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장)의 장례가 어제 충남 부여 선산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 전 청장은 생전에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지. 묘비나 분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명색이 산림청장을 지낸 사람이 죽은 뒤 산을 파헤치게 해서야 되겠느냐. 내가 심은 나무 밑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스스로 수목장을 준비한 케이스다.

수목장은 이제 홍보가 제법 많이 됐다. 2007년 법제화돼 전국 각지에 수목장림이 조성되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는 국유 수목장림이 있다. 하지만 수목장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공동묘지 인상을 주는 수목장림이 꺼림칙하다면 조상이 묻혀있는 선산에 손수 예쁜 나무 한그루 키웠다가 그곳에 수목장을 치르면 어떨까. 이 전 청장처럼.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