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입학사정관제 잘못하는 대학은 학과 폐지 등 강력 제재”

입력 2010-10-25 16:41


대담=고승욱 사회부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만큼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대표하는 인물이 있을까. 이 장관은 한나라당 의원 시절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교육정책 입안을 주도했다. 대선 이후에는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교과부 차관을 거쳐 장관을 맡았다. 이 장관과 ‘MB 교육정책’은 사실상 동일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 장관을 지난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만났다. 이 장관은 오페라 배우를 연상시키듯 여러 질문에 높낮이를 달리하며 대답했다. 그가 “정권 교체 이후 교육정책의 틀이 바뀌면서 좌우 구분 없이 ‘일방통행이다’ ‘소통이 없다’고 집중적으로 공격했죠”라고 토로할 땐 목소리 톤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10년간 교육정책은 잠든 학교 그 자체였다” “선진국들은 교육가지고 이념논쟁을 하지 않는데 과거 정부는 편을 가르고 이념으로 가르면서 교육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할 때는 날이 서 있었다.

현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서는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 호흡을 가다 듬었다. “최근에 학교를 가본 적이 있나. 학교를 가보면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한발짝씩, 한발짝씩 더디지만 꾸준히 학교 현장이 달라진다는 ‘긍정의 변화’가 현 정부 교육정책의 목표”라고 강조할 때의 목소리는 클라이막스를 향하고 있었다.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교과부 차관, 교과부 장관 중 어떤 자리가 가장 힘들었습니까.

“청와대 수석이 가장 힘들었어요. 국회의원도 4년 해봤지만 청와대가 가장 힘든 곳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는 입이 없고, 분신 역할을 해야 하니까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그 때 정치상황도 좋지 않았고…. 촛불시위가 있었죠. 특히 정권이 바뀌고 처음 시작할 때는 큰 틀을 바꾸는 거잖아요. 그러니 과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수석할 때 독단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소통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체질을 바꾸는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다 보니 여러 비판에 직면했죠. 이제는 큰 틀이 많이 잡혔다는 느낌을 받아요.”

-장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공정한 교육’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공정한 사회가 획일적인 평준화 사회는 아니잖아요. 좋은 일자리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어렵고 소외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사회로 인해 이뤄진 과실을 어려운 아이들에게 먼저 돌려주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학생 선발의 공정성은 그건 공정한 교육의 기본 중에 기본이죠. 그것이 소극적 의미의 공정이라면 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적극적인 의미의 공정한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뜻입니다.”

-공정한 교육을 위한 정책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특성화(전문계) 고교, 전문대, 지방대를 지원하는 것은 공정한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한 핵심 정책입니다. 통계를 보면 올해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의 79%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고등교육을 많이 받는 것은 좋은 거죠. 하지만 적성도 모르고, 진로도 모르고 그냥 대학에 진학하니 졸업할 때쯤 청년실업자가 되는 게 현실입니다. 어렵고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이 특성화고 나와서 좋은 곳에 취업하고, 대학가고 싶으면 직장생활 하다가 전문대에 진학하는 그런 사회적 통로를 열어두자는 것 입니다.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방문제도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지방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 지방대가 협력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면 지방대 졸업생이 많이 취업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느낀 점은.

“얼마 전에 특성화고 학생 전부에 대한 전액 장학지원 정책을 발표했어요. 3600억원이라는 예산을 기획재정부랑 협의도 하고 싸워도 가며 힘들게 확보했는데 별로 뉴스가 안 되더군요(웃음). 저소득층 지원이나 장학사업 등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입학사정관제, 사교육 등 대입과 관련한 뉴스와 비교할 때 반에도 못 미치더군요. 언론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거죠. 제가 장관을 하면서는 그런 풍토가 바뀌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안 물어볼 수 없습니다. 잘 정착되리라 보십니까.

“‘이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가겠지만 다음 정부에서도 잘 되겠느냐’는 여론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정부와 대학이 이 제도를 잘 운영해야 해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점수 1점 때문에 억울하게 탈락하는 것을 막겠다는 게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입니다. 또 국·영·수만 잘하는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체육도 잘하고, 예술도 잘하는 글로벌 인재를 키워나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교과부는 영어면접, 공인어학시험 성적 등을 평가자료로 활용하는 일부 명문대의 전형을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입학사정관제를 잘못 운영하는 대학에 대한 제재 방침을 시사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채찍을 고려중이십니까.

“지금도 입학사정관제를 잘못 운영하는 대학에 대해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 지원을 중단하거나 지원금을 삭감하는 등의 재정적 제재가 가능합니다. 현재 한국대학교육협의회법이 국회에 상정돼 있어요. 대교협법이 통과되면 학생정원 감축, 학과 폐지, 학생 모집정지 등 보다 실질적인 행정제재까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빨리 이 법이 통과돼 입학사정관제를 악용하는 대학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 체제가 확립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4학년도부터 적용될 수능개편안에도 찬반양론이 있는데요.

“현 정부의 입시 정책의 목표는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면 진학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에요. 이번 수능 개편도 이 목표에 따라 추진됐죠. 대입에서의 수능시험 의존도를 줄이고 수험생의 수험 부담을 경감시키는 게 가장 큰 목적입니다. 수능에 대한 부담을 줄여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이런 활동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평가받는다면 학교 교육은 정상화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죠. 국·영·수 과목을 세분화한 것은 학생들이 필요 이상의 어려운 시험을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문계 수험생이 상대적으로 쉬운 수학 A형을, 이공계열을 진학하려고 하는 수험생이 역시 상대적으로 쉬운 국어 A형을 선택하면 기존 수능에 비해 수험 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한국교총이 교원과 교원단체의 정치활동 허용을 요구하고 나섰는데요.

“교총이 주장하는 교원의 정치활동은 헌법, 교육기본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선거법 등에서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요. 헌법재판소는 2004년 초·중등 교원의 정치 참여는 직무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교원의 정치활동은 아직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학교현장을 정치의 장으로 만들고 학습권을 침해하는 등 혼란을 일으킬 수 있어 허용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원평가제, 학생인권 조례 같은 사안을 놓고 진보교육감들과 갈등을 빚어 왔는데요.

“갈등을 풀어가는 답은 학교현장에 있어요. 현장을 떠난 이념논쟁은 무의미하죠. 지난 8∼1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10 대한민국 좋은 학교 박람회’에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전국 150개의 학교가 참여해 저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한 이 박람회에 10여만명이 다녀갔죠. 서울의 좋은 학교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이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경기도의 좋은 학교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소개하더군요. 학교나 교육 현장에 가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합니다. 진보교육감들과도 터놓고 얘기하고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교원 임용정원 예고제를 촉구하는 ‘노량진녀’라고 불리는 한 임용시험 준비생을 만났습니다. 또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는 등 소통에 주력하는 모습입니다.

“노량진녀라는 임용시험 준비생을 만나보니 해결이 가능한 문제였어요. 6개월 전 알려주는 것은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고요. 정부 행정을 잘하고, 문제를 잘 개선하려면 여러 목소리를 듣는 게 매우 필요해요. 교육정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의 마음을 움직이고, 학부모는 공교육을 믿어주는 그런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가능해야 개혁이 성공하는 것이죠.”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2년 반 동안 이끌었습니다. 자평해본다면.

“지난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학교 현장의 변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책은 많이 쏟아져 나왔지만 현장은 10년 동안 잠들어 있었어요. 다른 분야는 변화했는데 교육만 멈췄거나 역행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 과거 정부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변화였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를 해주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교육은 배달사고가 많은 분야예요(웃음). 정부의 정책이 시·도교육청을 거쳐 학교까지 내려가는 과정에서 10을 추진하려 하면 현장에는 2∼3 밖에 내려가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고교 다양화, 입학사정관제, 교원평가제, 교장공모제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이 다 성공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현장의 변화가 워낙 더디니 학생과 학부모는 체감을 못하고 교사는 힘들어하고 그래요. 하지만 ‘우리 교육으로는 안된다’ ‘사교육 못 잡는다’는 비관론이 걷히고 교육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오나 다짐 한마디 한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변화의 틀은 다졌고, 이제부터는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시기입니다. 교육은 현장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죠. 그래서 학교나 교육현장을 더 많이 찾고 학생, 학부모, 교사들과 더 많이 소통할 계획입니다. 최근에 학교를 다니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듣는 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국민들도 학교를 더 많이 찾고 교육현장에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누구인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2006년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라는 책을 펴냈다. 이 장관은 이 책에서 “학교간 학력 격차와 조기 유학 등의 실태가 평준화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드는 다양화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입시교육의 폐해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이 자율형공립고, 자율형사립고,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기숙형공립고 등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율과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그의 오래된 소신이다.

정책에는 논쟁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모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치열한 당내 경선을 펼치던 2007년 7월,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당 검증위원회 간사를 많은 점은 그의 편향적이지 않은 정치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친이계, 친박계 모두 그의 간사 임명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장관 취임 이후 현장을 자주 다녔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이 장관은 “현장에 답이 있다” “학교 현장의 변화” 등 ‘현장’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이념 논쟁을 피하고 학교 현장의 작은 변화에 더 관심을 쏟겠다는 각오였다.

1961년생으로 만 49세인 그는 현 정부 장관 중 최연소다. 대구 태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로 활동하다 한나라당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교육 비전문가라는 지적에 대해 “인적자원을 다루는 노동경제학과 교육분야는 겹치는 점이 매우 많다”면서 “KDI 교수 이전부터 교육이 내 전공”이라며 맞받아친다. 부인 박은진(48)씨 사이에 딸이 있다.

정리=하윤해 기자